수입·양수 장소가 ‘국내’이기 때문에 위법···권리소진의 원칙 적용 안 돼

/ 사진=연합뉴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원피스, 짱구 캐릭터 모양의 미니블록 제품을 중국에서 국내로 수입·판매한 30대 남성 A씨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중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받은 제품을 중국에서 거래하지 않은 채, 국내로 수입해 되판 이 사례에서는 ‘권리소진의 원칙’의 효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권리소진은 정상적으로 판매한 기술·상품에 대해서는 권리자가 ‘다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원칙으로, 병행수입인정을 위한 논리적 근거로 제시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최근 저작권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벌금 1800만원을 선고받은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도라에몽 캐릭터의 저작권자인 일본인은 지난 2015년 10월 중국의 B사에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중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했다. B사는 다시 2015년 6월 C사에게 중국 대륙 지역 내(대만, 홍콩, 마카오 제외) 도라에몽 캐릭터를 이용한 ‘다이아몬드블럭’ 제품 판매권을 위임했다.

같은 해 A씨는 C사로부터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 약 960개를 수입해 국내에서 이를 다시 판매했다. A씨의 수입과 양수는 ‘국내’에서 이뤄졌고, 당시 C사로부터 ‘중국 내’에서 이 제품을 제공받거나 양도받지는 않았다.

A씨는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2심에서 벌금 18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상고심에서는 ‘권리소진의 원칙’이 쟁점이 됐다. 저작권법은 제20조에서 저작권자에게 배포권을 부여하면서도 그 단서에서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해 저작재산권자의 배포권에 관한 권리소진의 원칙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저작권자가 해당 저작물을 적법하게 판매한 이후에도 계속 배포권을 인정하게 되면, 저작물이 거래되는 경우마다 다시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인정된다.

결국 이 사건은 법에서 요구하는 ‘거래에 제공된 경우’가 국외인지 국내인지가 관건이 됐다.

대법원은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됐다면, 저작재산권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의 기회를 가졌던 것이고 이미 거래에 제공된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은 그 이후에는 자유롭게 유통될 필요가 있으므로 해당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대한 배포권은 그 목적을 달성해 소진된다”면서 “외국에서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됐던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국내로 다시 수입해 배포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소진의 원칙의 효과가 인정될 수 있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C사로부터 직접 수입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은 중국 내에서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수입돼 피고인에게 소유권이나 처분권이 이전됐으므로, 위 제품은 외국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가 아니라 국내에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C사는 B사로부터 중국 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이용 허락을 받았다. C사가 이용허락 계약에서 정한 판매지역을 넘어서 피고인이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판매한 행위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따라서 C사의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C사가 피고인에게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에 대한 저작권자의 대한민국에서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해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함으로써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에는 저작권법 제20조 단서 내지 권리소진 원칙의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잘못이 없다“라고 판시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대원미디어가 2014년 저작권자로부터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국내 상품화사업권을 취득해 현재까지 도라에몽 캐릭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