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온플법 제정 추진 나서
유니콘 탄생시킨 투자자들 우려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경쟁촉진법(이하 온플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나서자, 주요 투자자들이 법 제정 반대에 나섰다. 그간 한국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으로 키운 국내 투자자들은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1일 IT업계에 따르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법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플랫폼법은 카카오, 네이버 등 소수의 거대 플랫폼의 독과점을 사전 규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 사진=
이준호 소프트뱅크밴처스 대표가 온플법에 대해 언급했다. / 사진=링크드인 캡처

이날 이준호 소프트뱅크밴처스 대표는 “공정위의 온라인 플랫폼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혁신적인 스타트업인 네이버나 배달의민족, 쿠팡 같은 기업을 한국에서 목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리 테크 지형에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될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현재 추진되는 플랫폼경쟁촉진법이 그대로 도입되면 IT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오히려 외국 플랫폼 기업에게 반사이익을 얻게 해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스타트업에서 출발, 글로벌로 진출해 성장하는 네이버, 배민, 쿠팡 등 국내 테크기업만 대상으로 무작정 고민이 덜 된 규제를 하면 누가 큰 그림을 보고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냐”고 밝혔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2000년부터 당근마켓, 하이퍼커넥트, 네이버제트 등 한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투자해 유니콘 신화를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키운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회사로 꼽힌다. 벤처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지난 11월 말 기준 다수의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을 포함해 116개사에 5560억원 이상을 투자한 상태다.

쿠팡, 배달의민족 등에 투자한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 관련 논의에 “온플법은 회사들이 어느정도 커지면 더 제한을 받아야 하며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라며 “작은 회사들이 새로운 쿠팡·배민·네이버·카카오가 되기 더더욱 힘들고 한국에 투자하는 돈은 정부 돈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새로운 온플법의 적용은 국내 기업만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면서 “회사들은 언론과 법의 감시를 받고 있는데 그 위에 제한하는 것은 ‘더더더’하기에 찬물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김 대표는 지금의 공정위 법안 추진 상황은 지난 2010년 초기 국내 동영상 업체인 판도라TV가 유튜브에 밀려 몰락한 과거 상황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본인확인제와 저작권법 실시로 판도라TV 같은 국내 동영상 업체만 규제받은 바 있다.

그는 “오래전 동영상 서비스가 생겼을 때 판도라TV 인기가 높았고,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를 판도라가 따라잡지 못했다”면서 “당시 ‘불법 비디오가 올라오면 무조건 플랫폼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법이 통과돼 판도라TV를 보던 소비자들이 다 유튜브로 올라가면서 회사가 몰락했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온플법안을 조율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IT와 벤처캐피탈 업계 등에선 “대외 환경 악화로 스타트업 투자가 줄어 신생 유니콘을 육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온플법은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7조68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투자 건수도 지난해 5857건에서 5072건으로 줄었다. 기업당 투자 유치 금액도 32억2000만원에서 25억9000만원으로, 6억3000만원 줄었다. 마켓컬리 등 유니콘으로 인증받은 기업은 22개지만, 경기 부진과 경쟁 심화로 기업가치가 예년 대비 떨어졌다는 평가다.

주요 재계와 IT 유관 단체들도 반대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은 “(플랫폼법이) 토종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을 원천 봉쇄하고, 향후 기업들의 투자 동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IT 5개 단체가 모인 디지털경제연합도 “온라인 플랫폼 사전 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