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유족, 日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 제기해 10년 만에 승소 확정
‘소멸시효·국제재판관할권·청구권 협정’ 등 日기업 항변 모두 기각
日기업 피해자에 총 11억7천만원 배상해야···日정부는 ‘제3자 변제’ 언급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2023.12.21 jjaeck9@yna.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환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에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이른바 ‘2차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일본 기업은 이 소송이 2013년 2월, 2014년 2월에 제기돼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1차 손해배상)이 선고될 때까지 원고들에게는 피고에 대해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를 언제로 볼 것인지에 관해 명시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강제노역 피해자들과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 3명과 유족 오아무개씨는 1944~1945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 노역에 강제동원됐다며 2014년 2월 소송을 냈다. 곽아무개씨 등 7명도 2013년 3월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42~1945년 국책 군수업체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와 야하타제철소 등에 강제 동원돼 노역했다.

일본 기업 측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객관적인 장애 사유가 있음에도 일본 기업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하는 권리남용이라고 봤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일본 기업이 소멸시효가 완성됐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로 비로소 대한민국 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법적 구제가능성이 확실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강제동원 피해자 또는 그 상속인인 원고들에게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피고를 상대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 측은 국제재판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한민국은 이 사건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면서 “대한민국이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피고가 그 실질에 있어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외국법인의 동일성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도 봤다.

특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양국 간 피해 배상과 보상이 이뤄졌더라도, 이 사건은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이 일본 기업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라며 “원심 판단에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 및 효력에 관한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은 앞서 양금덕 할머니 등이 소송을 내 대법원이 처음으로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자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제기한 소송이어서 ‘2차 소송’으로 불린다. 판결이 확정되면서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은 피해자 한 명당 1억원~1억5000만원의 배상금과 지연손해금을 유족에게 지급해야 한다. 확정된 배상금은 총 11억7000만원이다.

◇ 민사소송에 개입한 일본 정부···“매우 유감이고 받아들일 수 없어”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매우 유감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이지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입장을 낸 것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날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매우 유감스럽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며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항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또 지난 3월 한국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언급했다. 그는 “원고들에게 배상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재단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제철 등은 판결 확정에도 지급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갈등이 이어지자, 지난 3월 한국 정부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 하야시 장관은 “한국 정부가 원고의 이해를 얻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계속해 갈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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