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다툼 벌어지면 추가 지분 확보 위해 매수세 결집
헤지펀드, 주주가치 제고·배당금 상향 요구···투자자 이목 집중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대기업집단 지주사들이 ‘만년 저평가주’라는 꼬리표를 떼고 있다. 그동안 상장된 소속 계열사 및 자회사보다 초라한 주가 성적표를 기록해 저평가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경영권 분쟁 및 행동주의 펀드(헤지펀드)의 훼방 등이 나타나면서 지주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예전보다 언론에 만이 노출되는 것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가 추가 지분 확보에 나서거나 우호 세력을 결집하는 등의 여러 움직임에 나서기 때문이다. 매수 물량이 많아지며 주가가 급등세를 타는 것이다.

한국앤컴퍼니가 대표적이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주가가 널뛰고 있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고문은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차남 조현범 회장의 경영능력에 불신을 나타내며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조양래 명예회장은 조현범 회장을 지지하며, 경영권을 지켜주기 위해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20일에도 장내 매수 방식으로 약 70억원을 들여 40만주(지분 0.42%)를 추가 매수했다. 같은 날 조 회장의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효성첨단소재 역시 20만주(0.21%)를 사들였다.

조 회장의 지분 42.03%와 조 명예회장(4.41%), 효성첨단소재(0.72%)를 합하면 47.16%다. 반면 조 회장의 퇴진과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조현식 고문 측 지분은 30.37%여서 시장에선 조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한다.

경영권 분쟁이 계속되며 조 명예회장 등 총수 일가 등이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사들이면서 주가는 요동을 쳤다. 올해 8월 25일 1만300원으로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던 한국앤컴퍼니는 최근 경영권 분쟁으로 한때 2만3750원까지 2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이달 20일 종가는 1만7700원으로 연초(1월 2일) 대비 27.3% 상승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경영권 분쟁은 ‘다툼’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에는 악재”라며 “하지만 주식 시장에선 호재로 인식된다. 지분 확보를 목적으로 상대방보다 높은 비중을 확보하기 위해 대량으로 주식을 매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도 대거 유입돼 주가가 빠르게 오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범 회장(가운데)과 장남 조현식 고문(왼쪽). / 그래픽=시사저널e DB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범 회장(가운데)과 장남 조현식 고문(왼쪽). /그래픽=시사저널e DB

헤지펀드의 경영 개입으로 지주사 주가가 오르는 사례도 있다. 삼성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은 최근 헤지펀드로 인해 주가가 빠른 속도로 올랐다. 영국계 헤지펀드인 ‘팰리서캐피탈’은 이달초 삼성물산의 주가와 실제 기업가치에 250억달러(약 33조원)의 차이가 있다며 주가 부양을 위해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다른 영국계 헤지펀드인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의 주당 배당금을 지난해 2300원에서 2200원(95.7%) 오른 4500원으로 상향하고, 내년까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이 기간 삼성물산의 주가는 지난 14일 13만5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헤지펀드의 요구를 삼성물산이 수용할 경우 추가 주주 환원책 마련이나 상향된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등으로 매수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포스코홀딩스와 LS 등도 신사업 진출에 대한 기대감에 올해 주가가 크게 올랐다. 포스코홀딩스의 연초 주가는 27만2000원인데, 이달 20일 종가 기준 49만6000원으로 82.6% 상승했다. 같은 기간 LS는 37.3% 올랐다. 두 기업 모두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진출하면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아 주가가 크게 올랐다.

반면 롯데지주와 SK는 연초 대비 현재 주가가 소폭 하락했다. 롯데지주는 5.8%, SK는 4.2% 떨어졌다. 유통과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요 계열사의 업황불안으로 인한 실적저조 상황이 계속되면서 지주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지주사의 주가는 변동성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올해 경영권 분쟁이나 헤지펀드의 개입, 신사업 발표 등이 이어지면서 변곡점을 맞이했다”며 “계열사나 자회가 같은 사업회사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집단의 지주사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앞으로도 주가가 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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