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가입자들, 회사 상대 민사소송 해 1·2심 모두 승소
원고 측 “공익적 목적이더라도 남용될 우려 있다” 주장
법원 “처리정지 요구권 원천적 제한은 안 돼” 판단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연 'SKT의 개인정보 가명처리 정지를 요구하는 소송 항소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정보주체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연 'SKT의 개인정보 가명처리 정지를 요구하는 소송 항소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정보주체 선택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가명처리된 개인정보가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된다 하더라도 정보주체에게 이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항소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보인권과 개인정보보호권 보장의 필요성을 확인한 진일보한 판결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기업의 데이터 이용을 위축해 산업 성장과 발전에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고법 민사7부(부장판사 강승준 김민아 양석용)는 20일 정아무개씨 등 5명이 SKT를 상대로 제기한 ‘처리정지’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2는 개인정보처리자에게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마케팅 및 광고 활용 등 사적 목적을 위해 개인정보를 활용할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공익적 목적인 경우 예외적으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원고들은 과학적 연구 등의 범위가 모호해 남용될 우려가 있고, 세 가지 목적이더라도 정보주체가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면서 ▲회사가 보유한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했는지 ▲만약 가명처리를 했다면 그 당사자가 개인정보 일체를 열람할 수 있는지 문의하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지지않자 가명처리 중단을 구하는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월 1심 법원은 가명처리에 대한 정보주체의 ‘처리정지 요구권’의 행사를 원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침해되는 정보주체의 사익이 그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했다.

이날 2심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선고 이후 최호웅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는 “2020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과학적 연구, 통계작성,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만들어서 처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다”면서 “(그러나) 정보주체는 어떠한 통제권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정보처리자는 가명정보를 이용해 제3자에게 제공하고, 이렇게 제공된 가명정보는 또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보주체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이 사건 소송이 시작됐다”면서 “정보주체에게 가명처리 정지 요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지은 참여연대 간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세 요건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기업이 과학적 연구라는 명목 아래 맞춤 광고나 AI개발에 가명정보를 활용할 우려가 있다”면서 “공익적 목적이더라도 정보주체에게 가명정보 활용을 거부할 요구권을 인정한 진일보한 판결이다”라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는 SKT 뿐만 아니라 KT와 LG유플러스 측에도 유사한 신청을 냈다. KT의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이 받아들여져 처리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LG유플러스의 경우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신청이 접수됐으며, 사측은 ‘법률에 따라 가명정보 처리를 잘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 ‘정보주체의 선택권 보장’ 확인했지만···산업 성장 저해 등 우려도

이날 판결에 대해 SKT 관계자는 “가명정보 처리는 그 자체로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도 함께 가지고 있다”면서 “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아쉬움이 있고, 판결문을 검토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상권 분석, 마케팅, 의료 분야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가명정보 사용에 제약이 생기고, 결국 산업 성장과 발전에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SKT 가입자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지만 넓게 보면 데이터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기업은 기존의 데이터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내용을 가명정보와 결합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등 데이터 관련 사업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면서 “구글이나 아마존,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용자들에 대한 훨씬 더 민감한 정보들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면 고도화된 서비스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데이터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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