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18일 현대자동차가 내년부터 지방에서 근무할 자동차 생산 기술직(생산직) 신입 모집을 개시한 후 취업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동종 업계, 직종을 통틀어 최고 수준의 급여와 복리후생 제도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자리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3월 현대차가 개시한 400명 규모의 생산직 신입 채용 일정에도 18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MZ세대들이 주로 지방 근무를 기피하고 서울, 경기권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 생산직의 매력이 얼마나 큰지를 엿볼 수 있다. 기아 생산직도 같은 맥락에서 각광받고 있다.

현대차·기아 생산직은 ‘최고, 왕’을 의미하는 영단어 킹(king)을 접두사처럼 붙인 ‘킹산직’으로 불린다. 사실 킹산직은 양사 노사가 함께 만들어낸 타이틀이다. 노사가 각자 위치에서 최고 성과를 내며 기업을 세계 반열에 올려놓았고, 킹산직 타이틀에 걸맞게 조합원을 대우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처우를 강화해 왔다.

다만 현대차·기아 노조가 올해 대내외적으로 일으킨 잡음은 ‘킹산직’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았다. 현대차는 지난 7월 12일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라 기업 이슈와 무관한 취지의 부분파업을 단행했다. 울산공장이 일정 시간 멈췄고, 이들에게 납품하던 부품사 직원들도 일손을 거뒀다. 현대차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지 않아 위법 소지까지 존재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기아 노조도 때 아닌 간부 비리 사건으로 내홍을 겪었다. 기아 노조 총무실장이 조합원들에게 나눠줄 티셔츠를 공급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입한 후 차액을 편취했다가 들통나 지난달 초 구속됐다. 이로 인해 집행부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정부가 올해 각 노조의 의무사항으로 도입한 회계 공시를 실시하지 않아 입방아에 올랐다.

양사 노조는 한편 한국의 낮은 노동생산성에 대한 일말의 부담감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012~2021년 노동 시간 대비 산업 국내총생산(GDP)으로 산출하는 노동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43.1달러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중하위(28위) 수준이다. GDP의 3.3% 비중에 달하는 금액을 수출하고 있는 양사가 그간 보여온 행보에 비춰볼 때 국가의 노동생산성 저하의 책임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양사 노조의 선배 조합원들에게 올해 초 감격에 겨워 입사한 후배 직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산업 내 높은 위상에 걸맞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귀족노조, 황제노조라는 조롱이 오래 이어진 마당에, 세력을 활용한 위법적·비윤리적 행보는 조합원 노동력을 스스로 상품화하는 자충수에 다름아니다.

현대차·기아 노조가 그간 정기적으로 지역에서 소외계층 장학금 지급, 단체헌혈, 차량 기증 등 사회공헌활동을 실시해온 점은 박수받을 일이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 7월 단체교섭을 통해 저출산 대책을 함께 고민하자고 사측에 손 내밀고, 2월 기아 노사가 공동 안전보건 선포식을 가진 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양사 노조에게 일 잘하는 것은 물론, 업계에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과한 요구는 아닌 것 같다. 내년부터 새 임기를 시작하는 양사 노조가 일도, 모범 활동도 화끈하게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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