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 회장. / 사진=한화
김승연 한화 회장. / 사진=한화

 

[시사저널e=조영훈 편집국장] 

‘3만5000원으로 보여준 따뜻한 위로’

12월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화클래식 2023’을 통해 소개된 조반니 안토니니(Giovanni Antonini)가 이끄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Il Giardino Armonico)와 클래식계의 맹아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Avi Avital) 공연 얘기다.

바로크 이전 시대 현악기의 원조 류트에서 파생된 만돌린은 이스라엘 출신 연주자 아비탈을 만나기 전에는 수 많은 바로크 현악기의 하나에 불과했다. 젊은 아비탈은 협주악기 또는 오케스트라의 일원에도 참여하지 못한 서민악기 만돌린을 당당히 ‘독주 악기’ 반열로 끌어올렸다.

사실 연주자들의 이러한 시도는 마치 우연처럼 등장하지만 클래식계에 뉴 트렌드로 자리잡기도 한다. 전설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바흐(Bach)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같은 명곡을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고비아(Andres Segovia)는 기타를, 게리 카(Gary Karr)는 콘트라바스를,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는 클라리넷을, 유리 바시메트(Yuri Bashmet)는 비운의 악기 비올라를 당당히 독주악기로 재창조했다.

몇 해전 세계적인 클래식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코부즈에 신간으로 소개된 아비탈의 비트윈 월드(Between World) 음반은 만돌린 만의 장점을 극대화해 마니아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음반이었다. 그가 도이체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의 전속 계약자가 돼 벌써 6장 이상의 음반을 발매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의 연주자의 공연을 전석 3만5000원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소중한 행복’이었다. 공연 하루 전 24시간 동안만 티켓 오픈을 했음에도 전석 매진에 만석을 이룬 것만 봐도 그렇다.

공연 프로그램도 정통 바로크 작품인 비발디(Antonio Vivaldi)부터 바흐(Johann Sebastian Bach)까지, 바로크 합주곡부터 하프시코드 협주곡 등을 만돌린 협주곡으로 편곡한 작품 등으로 채워져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다.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는 창간 40년을 앞둔 앙상블답게 단원들 간의 뛰어난 호흡을 바탕으로 잘 조율된 선율을 선보였다. 지휘자 겸 리코더 연주자인 안토니니는 발군의 리코더 실력을 협연을 통해 선보이는 한편 솔리마(G. Solimma)가 한국 전통악기 피리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피리, 현, 콘티누오를 위한 쏘(So)> 세계 초연을 통해 고악기를 위한 현대음악의 잠재력과 함께 우리 악기 피리가 가진 우수성을 세상에 알렸다. 앙코르곡도 남달랐다. 비발디 <만돌린 협주곡>의 1악장은 앙상블의 피치카토(Pizzicato)를 통해 만돌린 만의 온전한 선율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줬다. 무엇보다 마지막 앙코르곡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압권. 고악기와 피리가 하모니를 이룬 다이너마이트 연주에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공연이 이처럼 염가(?)에 가능했던 이유는 한화그룹의 전폭적인 투자 덕분이다. 사실 한화그룹은 스포츠와 불꽃 축제 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를 30년 넘게 후원해왔다. 한화그룹은 1989년 출범한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에 2000년부터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고, 2009년 예술의 전당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종신 회원증’을 발급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23년간 총 394개 연주단체, 451명의 협연자, 1143곡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무려 55만명이 이 공연들을 즐겼다. 

사실 김승연 회장은 ‘의리와 신용’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기업인. 하지만 그의 진면모는 ‘뚝심’이다. 예술의 전당에 대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김 회장은 2013년부터 고음악의 부활을 주제로 한 ‘한화클래식’ 시리즈를 직접 만들어 10년째 11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역시 세계적인 고음악 부활 흐름을 국내 연주자와 마니아들에게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기업의 문화계 특히 클래식 업계에 대한 메세나 활동은 가성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 클래식계의 오랜 후원자 ‘금호그룹’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음악인들에게 김 회장은 새로운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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