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한 정책, 여론도 긍정적···파업 가능성 의료계 설득하는 정치력 발휘해야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보건복지부 고위직 A씨는 일부 직원들로부터 영혼이 없는 관료로 비판받는다. 쉽게 설명하면 본인도 소신은 있겠지만 그걸 감추고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기자도 그가 윗사람 지시를 순종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같은 비판에는 과장도 포함됐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1979년 12·12 사태가 일어난 지 정확하게 44년 되는 날이다. 최근 ‘서울의 봄’ 관람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과거 방송됐던 제5공화국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12·12 사태로 실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요직에 선배 장군을 앉히려 하자 허화평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반대했다. 이에 전 사령관은 “내가 생각이 있어서 (선배를) 그 자리에 임명하려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 생각은 무능한 사람에게 요직을 맡기면 임명권자에게 더욱 충성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추정된다.  

다소 뜬금 없지만 A씨와 전두환 사례를 언급한 것은 복지부에서 의대 정원 확대라는 특급 현안을 맡고 있는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과 달리 정 정책관은 능력과 실력이 탁월하고 평판도 우수한 엘리트 정통행정관료다. 청와대에도 2번 파견됐고 전보 정부와 보수 정부를 불문하고 요직에 중용된 인물이다. 복지부 직원들도 정 정책관 칭찬하기 바쁘다. 

단, 한차례 예외는 있었다.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 고용복지수석 보건복지비서관실에 파견돼 행정관으로 근무하다가 복귀해 근무할 당시였다. 청와대 파견 기간은 2013년 3월부터 2015년 10월까지였다. 31개월을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복귀한 자리는 인사과장이었다. 이미 전임 인사과장이 연금정책국장으로 바로 승진하면서 직원들 비판 대상이 된 상황이었다. 통상 1년을 전후로 파견되는 청와대에 2년 반 넘게 근무한 것은 너무 일을 잘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과장으로 복지부에 보낸 청와대 의지도 짐작은 갔는데 느낌은 좋지 않았다. 다른 전망은 대부분 틀리는데 청와대 관련 기자 예상은 적중률이 50%를 넘었다. 당시 정 과장이 복지부 산하기관 인사를 하면서 담당과에 청와대 추천 인물을 강요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좋게 말하면 청와대 추천 인사를 소개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청와대 추천 인물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 과장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당시 사건이 복지부 내부 일이라면 정 정책관이 현재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국가 미래와도 연결된 중요한 사안이다. 기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은 환자이거나 잠재적 환자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살면서 최소한 한두번은 병원에 가기 때문이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가 확정돼 발표하면 자녀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준비하는 학부모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의대 정원 확대는 국민들 절반 이상이 찬성하는 정책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다른 전문영역은 개방됐는데 의사는 이번 기회에 문호가 열려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향후 의대 정원 확대를 빌미로 의사들이 파업하는 경우 국민들 비판이 제기돼 실제 파업이 불발될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물론 반대 전망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 정책관 과거 행적을 거론한 것은 혹시라도 높은 찬성율 등을 토대로 ‘답정너’ 방식의 정책 추진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기 위함이다. 답정너란 알려진 대로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의미다.                 

기자가 취재해 본 결과, 의료계 일각에서는 연내 복지부가 최종 의대 정원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내년 1월까지는 최종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예상된다. 현재 정 정책관과 복지부는 자칫 의료계 의견을 무시하고 답정너 방식으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끌고 갈 유혹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정 정책관과 복지부는 의대 정원을 의료계와 논의해 확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를 우대하면서 지원방안도 약속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어떤 식으로든 파업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관료사회에서 ‘대과 없이’라는 말을 가끔 사용한다. 큰 허물이나 큰 잘못을 의미하는 ‘대과’ 없이 의대 정원 확대가 최종 결론을 도출하길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 의료계도 좋고 정 정책관도 개인적으로 청와대 3번 파견이나 보건의료정책실장, 제2차관 승진이 가능할지 모른다. 반대로 앞으로 남은 기간 혹시라도 답정너 방식으로 의료계와 협의한다면 의대 정원 확대가 확정돼도 정 정책관과 복지부에 대한 평가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