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양, 시공사 선정 두 번째 무산
목동·서초에서도 신탁사·주민 간 갈등 심화
미숙한 사업 운영에 신탁 방식 사업 회의론 커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신탁 방식으로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미숙한 운영으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제동이 걸리는 사업지가 많아지며 신탁사의 전문성이 의심받고 있는 분위기다. 신탁사와 주민 간 갈등을 빚는 곳도 적지 않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이나 보완책이 담기지 않아 논란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의도 한양, 서울시에 발목 잡히자 신탁사 책임론 불거져 

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최근 시공사 선정 절차가 무산됐다. 서울시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으면서다. 서울시는 시행사업자인 KB부동산신탁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신속통합기획안을 토대로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고 부지 매수 협의가 되지 않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를 사업부지에 포함하는 등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다. 이로 인해 시공사 선정 총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된 이후 올해 7월부터 시공사 선정을 준비하며 속도를 냈다. 여의도 일대 재건축 추진단지 중 가장 먼저 시공사를 선정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에 시공사 선정이 무산되면서 공작아파트에 ‘여의도 1호 재건축’ 타이틀을 내주게 됐다.

여의도 한양아파트에서 시공사 선정 절차가 멈춘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여의도 한양아파트에선 7월에도 시공사 선정 절차가 중단됐다. 당시 KB부동산신탁이 마련한 시공사 입찰 공고문이 특정 시공사를 배제하는 내용으로 작성돼 단지 소유주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면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소유주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공사 선정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서다. 또한 단지 내 별도 필지의 상가를 매입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한 상황으로 시공사 선정이 중단될 경우 상가 매입가격이 상승하는 등 사업비 지출이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업비가 증가하면 소유주들의 추가 분담금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에서도 신탁 방식 재건축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곳은 지난달 총회를 열고 시공사인 GS건설과 시공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이 지난 1월 GS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뒤 약 10개월 만이다. GS건설이 제시한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받아들일 경우 소유주들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5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주민들은 시공사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시공사 재선정으로 인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해졌고 GS건설이 시공사 선정 이후 투입된 비용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중에 있어 법적 분쟁도 예상된다.  

이 밖에도 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 컨소시엄과 신탁방식 재건축 업무협약(MOU)을 맺은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에서도 신탁사가 일부 소유주 단체 동의율만 얻어 MOU를 체결해 반발을 사고 있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7단지에선 코람코자산신탁이 전체 소유주가 아닌 일부 소유주 단체와 재건축 업무협약을 체결해 문제가 됐다. 영등포구 신길우성2차·우창아파트에선 공사 도급 가계약 체결 과정에서 소유주 의견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자산신탁과 소유주가 마찰을 빚었다.

◇미숙한 사업 운영에 불신 커져···표준화되지 않은 수수료도 부담

업계에선 신탁사의 미숙한 사업 운영으로 인해 신탁 방식 재건축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 재건축은 전문성을 갖춘 부동산 신탁사를 통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조합 방식처럼 주민들이 모여 직접 사업을 진행하는 형태가 아니라 신탁사에 사업을 맡기는 것이다. 신탁사는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주민들 사이에선 시공사 선정과 공사비 검증 등에서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 대신 건설사, 금융사 출신 인력으로 구성된 신탁사가 나서면 각종 협상과 속도면에서 유리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수수료 산정 방식 등 계약조건도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공사비가 급등하며 주민들의 부담이 커진 가운데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수수료까지 추가되면서 비용적인 부담이 늘어난 탓이다. 또한 신탁사들의 사업비 조달 방식 역시 문제로 거론됐다. 통상 신탁사들은 시공사의 입찰보증금을 대여금으로 전환해 초기 사업비로 사용해왔다. 자금조달마저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 대책 내놨지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 없어

신탁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신탁방식 정비사업 표준계약서·시행규정 개선안‘을 배포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앞으로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 추진 시 사업에 필요한 초기 사업비와 공사비 등 자금을 신탁사가 직접 조달해야 한다.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을 담보로 초기 사업비를 조달하는 것도 금지된다.

그동안 불공정 항목으로 손꼽혔던 계약 해지 문턱도 낮췄다. 신탁 계약을 체결한 주민 모두가 계약 해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탁사가 계약 후 2년 내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 못하거나 주민 75% 이상이 찬성하면 계약을 일괄 해지할 수 있게 했다. 신탁 계약 해지가 자유로워진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 방식으로 갈아타는 단지들도 다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이나 그에 대한 보완책도 담기지 않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 정비사업에서 주민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수수료의 경우 별다른 가이드라인 없이 주민과 신탁사 간 협의해서 수수료율을 정하게끔 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주택공급을 위해 신탁 방식 추진을 장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강력한 제재를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최근 신탁 방식 사업장에서 일어난 문제들이 미숙한 운영으로 발생한 만큼 사업시행자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수료도 주민과 협의해서 정하는 것보단 시공사 선정처럼 경쟁입찰을 통해 낮추는 방향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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