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밀, 팜유 등 가격 일제히 하락
식품업계 가격 인하 소식은 없어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식음료 가격을 둘러싼 정부의 집중 단속이 가해지고 있다. 고물가에 원자재값 인상을 이유로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정부의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식품사들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국제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식품사들의 가격 인하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1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29개 주요 식품에 대해 지난해 9월과 올해 9월 사이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원재료가격 등락률을 비교한 결과, 8개 품목은 원재료가격 하락에도 소비자 가격이 올랐다.

올 3분기 기준 . / 자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표=김은실 디자이너
올 3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가격상승률 상위 10개 품목. / 자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표=김은실 디자이너

올 3분기 기준 가격 인상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케첩이다. 케첩은 전년 동기 대비 가격이 28,3% 올랐고, 마요네즈는 23.3%, 쌈장 19.5%, 아이스크림 18,6%, 어묵 18.2% 등이 큰 폭 상승했다. 이 외 맛살, 된장, 참기름, 고추장, 간장 등도 가격상승률이 높았다.

원재료 가격 상승분보다 소비자가격 상승폭이 더 큰 제품도 있다. 고추장, 우유, 된장, 쌈장, 햄, 아이스크림 등 6개 품목이 대표적이다. 고추장은 원재료가격이 5.7% 오르는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23.1%나 뛰었고, 우유는 원재료가격 상승률이 3.1%인 반면 소비자물가지수 오름폭은 8.5%를 기록했다. 우유의 출고가 상승률은 1년 사이 13.5%에 달했다.

식품업계의 잇단 가격 인상 영향으로 올 3분기 주요 식품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썼다. 빙그레는 올 3분기 영업익이 6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3.9% 올랐다. 같은 기간 삼양(124.7%), 농심(103.9%), 오뚜기(87.6%), 매일유업(63.7%), 풀무원(55.2%), 대상(50.3%), 롯데웰푸드(40.9%), 오리온(15.6%) 등으로 영업익이 큰 폭 상승했다.

일부 식품사들은 올 3분기 누적 매출 기준 국내 실적이 큰 폭 개선되기도 했다. 빙그레는 올 3분기 누적 내수 매출이 8414억원으로 전년 동기(7729억원) 대비 685억원 늘었다. 농심도 같은 기간 국내 매출(1조8571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077억원) 대비 1494억원 늘었다. 오뚜기 역시 1~3분기 국내 매출이 2746억원 상승했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부당 편승한 가격 인상 사례도 꽤 있다”면서 “기업 스스로 이런 불합리한 가격 인상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요 식품사 올 3분기 영업익. / 표=김은실 디자이너
국내 주요 식품사 올 3분기 영업익 증가율. / 표=김은실 디자이너

상황이 이러하자 정부는 최근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을 찾아 가격 안정화를 요청했다. 지난달 28일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관은 빙그레 충남공장에 방문했고, 양주필 식품산업정책관은 CJ프레시웨이 본사에 방문해 식품 가격 동향을 점검했다.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 기업도 있다. 오뚜기는 이날부로 분말 카레와 케첩 등 24종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풀무원도 이날부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요거트 제품 3종의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었으나 철회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협조, 민생 안정에 동참하겠다는 것이 양사의 입장이다.

다만 반대로 국제 원재료값이 내리고 있지만 식품사들의 제품 가격 인하 소식은 잠잠하다. 지난 7월 농심은 신라면 봉지면과 새우깡 출고가를 각각 4.5%, 6.9% 내렸다. 롯데웰푸드도 빠다코코낫, 롯샌, 제크 등 가격을 편의점가 기준 1700원에서 1600원으로 인하했다. 그러나 식품사들의 큰 폭 가격 인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특히 소비자협의회가 조사한 생활필수품 39개의 가격을 분석해보니 올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생활필수품 가격은 평균 8.3% 올랐다. 소비자협의회 측은 “식품사 가격 인상의 주원인으로 꼽는 대두, 밀가루, 천일염 등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오름세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음에도 가격이 올라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실제 대두와 팜유 등 수입산 원재료는 가격 안정세를 찾았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제 대두는 t당 1298달러, 팜유는 t당 894달러로 기록됐다. 이는 각각 전년 대비 340달러, 344달러 떨어진 수치다. 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t당 419.22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소맥(밀) 가격은 이달 t당 207.13달러로 떨어졌고 옥수수 가격 역시 지난해 5월 t당 310.62달러를 기록, 현재 t당 185.27달러까지 하락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론 밀가루를 비롯한 원재료 가격이 안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외에도 가격 인상 요인이 많아 제품 가격 인하를 고려하기 어렵다”면서 “일부 기업들이 가격 인상 계획을 밝혔다가 철회했지만 인상 계획을 언급한 것 자체가 고물가인 상황에서 기업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제 밀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라면, 빵 등 가격을 올렸는데 올해 국제 밀, 팜유 가격이 내렸음에도 식품업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면서 “이러한 현상은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즉 기업 탐욕에 의한 인플레이션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그리드플레이션은 먹거리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상승을 초래한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이어 “인플레이션 분위기에 편승해서 제품 가격을 인상할 요인이 없어도 식품사들이 가격 인상을 고집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물가 안정에 협조하고 있지만 이 역시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기업의 이윤 극대화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