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8조4100억원 만기 도래···지수 반등 없다면 대규모 손실 전망
ELS 판매량, 은행 비이자이익과 직결···증가세 이어가던 신탁 수수료 이익 축소 불가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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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최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대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금융권들이 잇따라 판매 중단 조치에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판매 중단이 이뤄지면서 은행들의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무더기 손실 우려로 번질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신탁수수료 이익 축소가 불가피 할 전망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 상품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커지면서 관련 상품 판매 중단 결정을 내렸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국을 포함한 금융시장 전망과 타 금융기관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향후 판매 방향을 정하기 위해 판매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NH농협은행은 지난달부터 전국 각 지점에서 주가연계증권 판매를 중단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주가연계신탁(ELT) 관련 원금손실 우려가 있는 상품을 판매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은 이번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현장지원반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각 영업점 현장을 점검하면서 고객에게 시장 상황 등 정보를 제공하고 문의에 답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홍콩H지수가 편입된 ELT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12월부터 홍콩H지수 ELS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H지수 ELS의 계약 시점은 2021년 상반기였다.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H지수는 2021년 초 1만~1만2000포인트까지 올랐다가 현재 50% 수준인 6000포인트까지 추락했다. 개별 상품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내년 상반기에 주가지수가 지금보다 20~30% 이상 반등하지 않는다면 주가 하락폭만큼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이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 잔액은 20조5000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이 중 15조8860억원 규모가 은행에서 판매됐다.

은행별로 판매 잔액을 살펴보면 KB국민은행 7조8458억원, 신한은행 2조3701억원, 하나은행 2조1782억원, NH농협은행 2조1310억원, 우리은행 413억원 순이다. 상품 구조와 현재 주가수준을 감안했을 때 현재 상태로는 3조~4조원대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된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판매 잔액은 8조4100억원 규모다.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전체 잔액 가운데 57%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NH농협은행 1조4833억원, 신한은행 1조3766억원, 하나은행 7526억원, 우리은행 249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홍콩H지수가 빠른 시일 내에 강하게 반등하지 않는다면 내년 상반기 ELS 손실률은 수십 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ELS 판매량은 은행의 비이자이익과 직결된다. ELS 판매가 은행의 주요 비이자이익 수익원이었던 만큼 이번 사태로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 전략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신탁수수료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 동안 증가세를 이어오던 신탁수수료 이익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3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 누적 신탁수수료는 72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ELS 판매를 중단하지는 않더라도 시장 분위기에 따라 판매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내년에 H지수 연계 ELS 손실 상품의 대규모 만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ELS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금 비보장 상품 판매가 위축되고 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은행의 수수료이익 부분에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당국은 은행이 소비자의 가입 목적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는지, 또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설명했는지, 투자 권유 관련 서류에 대필 기재하거나 원하는 답을 유도한 사실은 없는지 등을 조사해 대략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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