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혹한기 속 임상 중단, 구조조정 러쉬
국내 기업 가치 재평가···기술력으로 승부 볼 때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고금리와 경기 둔화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바이오 시장은 투자 한파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수익 창구가 마땅히 없는 신약개발 기업 특성상,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생존 기로에 선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출이 전무한 벤처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바이오 산업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다. 

IPO 시장도 얼어 붙었다. 앞서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자 자본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기술특례상장 심사 문턱은 높아졌고, 상장 심사 지연을 겪는 바이오 기업도 늘었다. 상장에 성공해도 공모가 희망 범위 하단에서 최종 공모가가 정해지는 등 수모를 겪고 있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2018년 이후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10곳 중 7곳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상장은 당장의 수익보다는 기술 잠재력이 큰 기업에게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다. 

기술 반환, 임상 중단 등 사실상 개발 실패로 끝난 신약 프로젝트 소식들이 더해지면서 가뜩이나 냉기가 돌던 시장엔 어느샌가 '혹한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경기 침체 상황 속 당장 사업적 성과가 없는 바이오 벤처들은 투자 매력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시장의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그나마 상장 기업은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 등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기회가 있지만, 비상장 기업은 투자처를 찾기 더욱 막막한 실정이다.

신약 개발은 기술이전 등 매출 가시화까지 호흡이 긴 만큼, 연구개발(R&D) 투자금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다. 자본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이 R&D 비용을 줄이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간소화하고, 구조조정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이유다. 실제 올 한 해는 바이오 기업들의 자본조달 이슈가 끊이질 않았고, 임상 중단 등의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다수의 바이오 벤처는 주가 부진으로 CB 조기상환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금 CB를 발행하거나 유상증자에 나섰다. 채무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자본시장에서 빌린 돈을 갚고자 또 다시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 기업이 늘어났고, 일부 기업은 임상을 조기 종료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시장성이 없는 파이프라인에 더 이상 매몰비용을 쏟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몇몇 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한 후보물질을 반환 받으며 개발 전략을 다시 세워야하는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산업의 위기감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선 "자금줄이 없는 벤처들은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다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똘똘한 파이프라인과 제대로 된 기술력을 가진 기업만 살아남게 되는 '산업 새판짜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고, 바이오 혹한기에서 살아남는 기업의 가치는 분명 재해석되는 날이 올 것이란 기대다. 

코로나19 펜데믹 이전, 방만한 파이프라인과 개발 기대감으로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던 바이오 호시절은 끝났다. 바이오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고, 업계는 기업의 기술력과 파이프라인의 시장성에 주목한다. 유한양행의 3세대 폐암 표적치료제 '렉라자', 오름테라퓨틱스의 1억 달러 업프론트, 종근당의 1조 7000억원 기술수출 빅딜처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성과까진 아니더라도 R&D 역량에 대한 기술력 입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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