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 조짐에···재건축 선회 단지 늘어
‘리모델링 규제 강화·공사비 증가’ 변수로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은 물론 수도권 리모델링 단지들이 변곡점을 맞이한 모양새다. 리모델링에 대한 규제는 강화된 반면 재건축 정책은 느슨해지면서 조합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앞으로 공사비 상승 등 변수도 많아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규제 완화, 재건축으로 선회

2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홍제한양’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주민들로부터 재건축 안전진단 신청 동의서를 받고 있다. 이곳은 998가구로 홍제동에서 두 번째로 큰 단지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토지 소유주 중 87%가 재건축을 원해 사업 방식을 변경했다.

재건축으로 선회한 건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사업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곳은 용적률 229%로 사업성이 낮아 2021년부터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6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으로 사업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역세권 정비사업 시 용적률이 법정 상한의 1.2배까지 완화된다. 여기에 서울시가 북한산 인근 고도제한을 풀면서 사업성은 더 향상될 전망이다.

◇리모델링 규제 강화···“안전·공공성 확보돼야”

서울시가 리모델링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는 지난달 리모델링 정책 방향이 담긴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수평증축 리모델링도 수직증축처럼 2차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수평증축은 기존 아파트 건물 일부를 철거한 뒤 새 건물을 옆에 붙이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1차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사업추진이 가능했지만 앞으로 수직증축처럼 2차 관문을 넘어야 한다.

또한 재건축 수준으로 공공성이 강화됐다. 서울시는 리모델링 증축 시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친환경 정책 반영, 단지 내 시설 개방 등의 공공기여 방안을 마련했다. 그동안 리모델링은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공공기여를 하지 않아도 됐다. 늘어나는 가구 수는 적지만 공공기여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 리모델링 사업의 장점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청에 대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는 리모델링 사업에서 안전·공공성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 왔다. 실제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최근 리모델링이 빠른 추진이나 저렴한 공사비 등의 장점이 없어지고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며 “기반시설이 열악한 것이 노후도시인데 기반시설 정비 없이 리모델링으로 가구수만 15% 늘리는 것은 상당히 걱정스러운 부분이다”고 리모델링에 대해 보수적인 의견을 내놨다.

서울시의 규제 기조 아래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곳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구로구 신도림 ‘현대’(450가구) 역시 사업 방식을 변경했다. 지난해 리모델링 조합설립을 본격 추진했으나 결국 해산 절차를 밟고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준비 중이다. 성동구 ‘응봉대림1차’(855가구)도 리모델링으로 재건축으로 선회하고 최근 안전진단을 D등급으로 통과했다.

◇‘1기 신도시 특별법’ 통과 코앞···리모델링 접는 단지도

리모델링이 활발하게 진행됐던 1기 신도시에도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기 신도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내 특별법 처리를 당부한 가운데 여야 모두 1기 신도시 재건축 활성화에 공감한다며 연내 특별법 통과를 약속한 상태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20년이 넘는 100만㎡ 이상 택지의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200% 안팎인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높이는 방안이 핵심이다. 여기에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완화와 인허가 통합심의 등 간소화 방법으로 개발 속도를 높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분당과 일산 등 5개 수도권 1기 신도시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목동과 상계, 중계, 부단 해운대, 대전 둔산 등 전국 51개 지역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리모델링 사업을 접는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 평촌신도시에선 ‘은하수마을 청구’와 ‘샘마을대우’, ‘한양’ 등이 리모델링 사업을 철회했다. 고양 일산신도시도 일부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 사업 철회 여부를 놓고 주민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리모델링을 고려했던 일부 단지는 사업 철회 소식에 매물이 대거 쏟아지기도 했다.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심해지는 등 앞으로 리모델링 사업환경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2년 전과 비교해 3.3㎡당 공사 비용은 500만원대에서 700만~800만원대로 높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는 물론 정부가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에 힘을 주고 있는 만큼 조합원들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며 “통상 리모델링은 사업성이 낮은데 앞으로 공사비가 상승할 것을 고려하면 이탈 단지가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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