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특별법 등에 밀려 뒷전으로···연내 통과 가능성 희박해져
“청약 당첨자 자금 조달 계획 다시 짜야할 판···분양권 전매제한 효과도 미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부동산 정상화를 위해 추진해 온 ‘실거주 의무 폐지’가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치권 이슈로 떠오른 1기 신도시 특별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에 밀려 연내 처리가 힘들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무산되면 자금 조달 계획을 다시 짜야 하고 입주 후 최소 2년간 실거주해야 하는 만큼 당첨자들이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23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위원회는 전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실거주 의무 폐지가 담긴 ‘주택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야당이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실거주 의무가 폐지될 경우 갭투자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1·3부동산대책을 통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이를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입주 즉시 2~5년간 실거주를 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2021년 2월 도입된 제도지만 분양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는 정부 발표 이후 네 차례나 법안소위에 상정됐음에도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오는 29일과 다음 달 6일 법안소위가 예정돼 있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 논의가 제대로 될진 미지수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이슈가 1기 신도시 특별법과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집중돼 있어서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부동산 시장 불안과 수도권 특혜를 이유로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던 야당이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연내 통과시키겠다고 밝히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재건축의 걸림돌로 꼽히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역시 여야가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합의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다만 실거주 의무 폐지까지 동의할 경우 야당 입장에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동조하는 것처럼 비출 수 있는 만큼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앞으로 열리는 법안소위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내년 총선 정국으로 돌입하게 되면 여야가 상임위, 본회의 일정을 잡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하면 내년 5월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약 당첨자들의 자금 조달에도 비상이 걸릴 전망이다.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입주 시기에 전세를 놓고 잔금을 치를 수 있어 자금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1·3대책 발표 이후 미분양 우려가 컸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등 서울 주요 분양 단지에선 계약률이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규제 완화 기대감에 청약에 나선 수요자는 자금 마련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등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또한 정부 말을 믿고 기존 집 전세 계약을 연장했던 사람들은 입주 시점이 다 되도록 실거주 의무가 안 없어지면서 전세 계약을 중도에 해지해야 할 처지가 됐다.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66개 단지, 4만3786가구에 달한다. 강동구 ‘e편한세상 강일 어반브릿지’(600가구)는 내년 2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강동헤리티자이’도 내년 6월이 입주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00가구) 입주도 1년 가량 남았다.

분양권 시장에도 찬 바람이 불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했다. 수도권의 경우 공공택지와 강남3구, 용산구는 분양권 전매제한이 최대 10년에서 3년으로 줄었고, 나머지 서울 전역 등은 전매제한이 1년으로 대폭 완화됐다. 실거주 의무 폐지와 함께 분양시장을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실거주 의무 폐지가 빠진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매제한이 풀려도 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전매를 할 수 없어서다. 현행 주택법상 실거주 의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거주 의무가 폐지 안 되면 전매제한 완화는 무용지물이다”며 “올림픽파크포레온은 그나마 입주가 1년 남짓 남았으나 e편한세상 강일어반브릿지나 강동헤리티지자이는 내년 상반기 입주를 앞두고 있어 혼선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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