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인허가 절차 동안의 물가상승분·트렌드 반영한 설계변경·자재 따라 공사비 큰 차이
최초 제안한 공사비가 되레 시공사에 대한 신뢰 잃게 되는 계기 되기도

노경은 금융투자부 기자
노경은 금융투자부 기자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전국의 정비사업 조합이 너 나 할 것 없이 곤경에 빠졌다.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을 이유로 시공사들이 애초 제안했던 공사비보다 훨씬 비싼 값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건설사 사정을 들어보면 조합 입장에서도 인상의 근거는 일리 있어 보일지라도 선출직인 이상 조합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공사비가 늘어나면 조합원 개개인이 내야 하는 추가분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반박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반기를 드는 조합원이 급증하는 순간 사업은 지연되고 조합장과 집행부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근래 2~3년 사이 발생한 일이 아니다. 건설업계의 원자잿값 인상 이슈가 있기 전부터 비일비재했고 공사비 인상에 따른 갈등과 같은 사연 없는 사업장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즉 정비사업장에서 공사비 인상은 단지 근래의 원자잿값 상승 때문만은 아니란 말이다.

시공사 선정 과정을 보자. 조합은 새 아파트로 변신시켜줄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앞서 평당 공사비를 제안한다. 그럼 해당 사업장의 시공권 확보에 관심있는 건설사들은 사업계획 미인가상태에서 단지 조합의 입찰공고에만 맞춰 시공자가 제안한 가격 미만으로 응찰하고 시공사로 선정되면 가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시공사의 대안설계와 조합원들의 니즈를 반영해 건축심의 및 사업시행인가를 획득하게 된다. 이 역시 완벽한 착공 도면은 아니며 밑그림 수준이다.

그리고는 관리처분인가 때 본 협상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때는 공사비에 물가인상분도 반영해야 한다. 또 이주 및 철거를 완료한 후 착공 직전에는 최종 공사비 협상을 하게 된다. 착공도면 기준으로 트렌드를 반영하며 설계가 변경되거나 인근 멋드러진 단지에 착안해 마감재를 업그레이드 하는 변경을 진행할 때마다 공사비는 거듭 변화한다.

그럼 최초 조합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입찰에 참여했던 당시 제안했던 금액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나버린다. 보통 시공사를 선정하는 시점인 사업시행인가 전후부터 착공까지는 수 년, 길게는 십수년이 지나버리다 보니 물가 상승분만 반영하더라도 공사비는 99% 이상의 사업장이 늘어나는 쪽으로 변한다. 또 세월이 지나면서 조합원이 요구하는 단지 고급화 항목도 다양해진다. 결국 공사비 인상분을 줄이기 위해선 조합은 최초 건설사가 입찰 당시 제안했던 무상옵션 항목을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형편은 뒤로 한 건축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조합원 입장에서는 건설사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뽑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할 때는 평당 공사비도 저렴하게 해준댔는데, 시공사로 결정되고 나니 공사비를 거듭 올리는 꼴이니 말이다. 여기에 무상으로 달아준다던 옵션은 건설사가 꿀꺽 먹어버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정비사업이 시작되면 시행의 주체인 조합과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사는 사실상 한 배를 탄 셈인데 신뢰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게 시공사 교체, 집행부 해임 등의 파국을 맞게 되는 보통의 정비사업장 사정이다. 조합원 개인으로서는 사업일정이 지연되면 금융비용이 계속 증가한다. 사업이 늘어지는 상황을 겪는 사업장이 많아지면 주택시장에서는 시장에 풀리는 공급물량이 씨가 마르게 된다.

공사비는 최초 제안한 금액이 아니라 입주 때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 지자체에서 지역 및 준공 시점별 각 사업장 평당 공사비용만 공시하도록만 하고 차라리 입찰 당시에는 공사비를 제안하지 않도록 하는 건 어떨까. 사업을 진행하려는 이들은 지자체에 공시된 참고자료를 통해 우리 사업장의 대략적인 공사비를 가늠하면서도 시공사를 더 신뢰할 수 있어 사업이 조금은 더 순탄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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