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 100일 만에 사망 노동자 유족에 공식사과
이윤 추구 기업 속성상 잘못 인정 쉽지 않아
안전 적극 투자 기업에 과감한 인센티브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건설노동자 사망에 대해 원청 대기업이 사과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지난 8월 11일 부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청노동자 고 강보경씨가 창호보수작업 중 추락사한지 102일 만에 원청사인 DL이앤씨가 공개 사과한 것이다. 

지난 20일 마창민 DL이앤씨 대표이사가 고인의 분향소를 방문해 유족에게 고개를 숙였고 다음날엔 DL과 유족측 간 사과 형식과 중대재해 재발방지책, 배상 방안 등을 담은 합의 조인식을 가졌다. DL그룹 사과는 강씨 외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DL이앤씨 건설현장에서 숨진 다른 하청근로자에 대한 책임까지 인정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단 평가를 받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강씨가 숨진지 한 달 가량 지난 9월 15일 유족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책임 인정과 사과를 회피하는 DL을 상대로 싸우겠단 의사를 밝혔다. 이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도 강씨 유족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0월 중순부터는 DL그룹 본사 앞에 분향소 천막을 설치하고 피켓시위에 나섰고, 국정감사 중이던 국회도 이 사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해욱 DL그룹 회장에 대한 청문회 실시계획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후 본격적인 대화 물꼬가 트였다. 양측은 이달초부터 10여차례 만나 본격적 협상을 진행했고 마침내 합의에 도달했다.

DL이 유족에 무뤂을 꿇기까지 100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시 사고 예방의무를 다하지 않은 가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쉽게 말해 잘못을 인정하면 회사에 손해가 갈 수 있단 것이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움직인다. 회사가 손해를 보는 건 주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DL이 사과에 인색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문제를 제기하는 기업 주장의 기저엔 비용 증가가 있다. 안전조치를 다 챙기려면 비용이 늘어나 회사경영에 부담을 준단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 속성이 그렇더라도 영리추구가 사람보다 중요할 순 없다. 양측이 합의 조인한 날, 유족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했음에도 침통해 했다. 어떤 보상으로도 세상을 떠난 가족을 대신할 순 없기 때문이다. “내 아들 살려내라”를 되풀이하며 오열하는 노모가 이를 말해준다. 

DL의 사과를 계기로 중대재해 관련 정책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1월 시행 이후 2년 가까이 흐르면서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로부터 개정 주장이 제기된다. 양측 모두 ‘중대재해는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문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다르다. 경영계는 중대재해가 처벌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비판하는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열 사람이 도둑 한 명 잡기 어렵다’는 얘기가 있듯, 안전조치를 꼼꼼하게 했다 하더라도 사고를 0%로 막기는 쉽지 않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다만, 기업 속성상 비용 측면만 따지면서 근로자 안전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경영진이 안전보다 이윤에 눈이 멀지 않도록 유도하면서, 안전에 진심인 기업엔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중대재해 사고를 낸 기업들이 사과에 인색한 풍토가 바뀌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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