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총수 일가 고발 지침’ 행정예고···경제단체 반발에 사실상 폐기
부당한 이익 얻은 특수관계인이 무관?···‘관여 등’ 합리적 추정 가능
주식지분 비율 초과하는 부당한 이익 취득 규제 필요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익편취 행위를 적발해 사업자(법인)을 고발할 때 ‘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고발지침 개정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개정을 앞두고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자 한 달도 안 돼 이를 수용한 것이다.

총수 중심의 한국식 경영풍토와 부당한 이익 제공을 통한 수익이 결국 특수관계인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정위의 후퇴에 아쉬움이 남는다.

앞서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고발지침) 개정안을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8일까지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의 행위가 중대해 해당 행위를 한 사업자를 고발하는 경우 이에 ‘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했다.

그동안 공정위가 중대한 사익편취행위를 한 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공정위 조사만으로는 특수관계인의 관여 정도를 명백히 입증하기 곤란해 특수관계인을 고발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다. 재벌 봐주기, 총수일가 면피 논란이 반복된 것이다.

실제 총수 일가 개인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호텔에 미래에셋이 일감을 몰아준 사건, 삼성 총수일가의 캐시카우(Cash-cow)였던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삼성 계열사의 사내급식 일감을 몰아준 사건, 자회사가 생산한 재료를 과다계상된 가격산정방식으로 구매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건 등 경우에서도 ‘사적 이익을 얻은 주체’는 분명했지만, 동일인 및 특수관계인은 고발되지 않았다.

이에 중대한 사익편취 행위가 발생했다면 검찰 수사로 특수관계인의 관여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문제 인식과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위해 회사에 대한 특수관계인의 부당한 이익 편취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번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재계는 개정안이 나오자 ‘객관적으로 중대하고 명백한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형사고발하도록 규정한 상위법(공정거래법)에 위배되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6개 경제단체는 지난 6일 열린 공정위와의 간담회에서도 고발지침이 고발 대상과 사유를 확대했다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재계의 거친 반발에 공정위는 결국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조항과 표현 등을 수정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구체적인 수정 범위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원안을 포기하기로 한 만큼 상당한 수준의 후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경제활동 위축이라는 우려를 감안하더라도 고발 자체를 봉쇄하자는 재계의 주장에 고개가 갸울어진다.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 행위로 이익을 봤다면 이에 ‘관여’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제23조의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는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해 특수관계인의 이익제공행위에 대한 ‘지시’ 뿐만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법원도 최근 판례를 통해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특수관계인이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 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사익 편취에 관여한 정도의 폭을 넓게 인정했다.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여’했는지를 판단할 때 여러 제반 사정을 종합하라고 하면서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총수 중심의 한국식 경영풍토에서 회사의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는 사실 동일인과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가 없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법인에 대한 제재가 결정되고 고발까지 되는 사안이라면, 특수관계인의 ‘관여’ 역시 면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를 형사법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어렵다면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 된다. 그러나 적어도 부당한 이익 제공이 확인된다면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를 수사기관이 확인·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부의 견제와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 차원에서도 공정위 개정 취지 방향성은 옳다. 특수관계인이 주식지분에 따른 비율적 이익을 초과하는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등 지배주주 지위남용 행위가 계속돼선 안 된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 등 그 위상에 견제를 받고 있다. 공정위가 재벌을 감싼다고 의심받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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