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 에버랜드 운영 주체 삼성물산 상대 손해배상 청구
“물리적 충격은 장애 여부와 무관···막연한 추측으로 이용 막아선 안 돼”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 / 사진=에버랜드 페이스북 갈무리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 / 사진=에버랜드 페이스북 갈무리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탑승을 제한한 것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재차 나왔다.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탑승객이 받는 물리적 충격은 장애와 무관하며 막연한 추측으로 시각장애인의 이용을 막아선 안된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19-3부(부장 배용준 황승태 김유경)는 8일 시각장애인 김아무개씨 등 3명이 에버랜드의 운영 주체인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들에게 각 2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에버랜드 놀이기구 가이드북 내용 중 “신체적·시각적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이용이 제한되거나 동반자 동승이 요구될 수 있다”는 문구에서 ‘시각적’을 삭제하는 등 수정을 함께 명령했다.

선고 이후 원고 측 대리인 김재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받는 물리적 충격이나 대피 과정 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라며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막연한 추측만으로 장애인의 이용 막아선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한 판결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법원이 장애인에 대한 추측이나 선입견 때문에 제한하는 게 차별이니 이제라도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며 “피고가 상고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김씨 등은 2015년 5월 경기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에서 자유이용권을 끊고 롤러코스터인 ‘T-익스프레스’를 타려다 제지당했다. 에버랜드 내 놀이기구 이용과 관련한 안전수칙 및 탑승제한규정 등을 정한 ‘어트랙션 안전 가이드북’에 따른 조치였다. 가이드북의 내용에 따르면 에버랜드는 스릴 레벨이 높거나 탑승자의 운전이 필요한 놀이기구 7종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김씨 등은 “안전상 이유로 시각장애인의 탑승을 제지한 것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위반한 것이고, 이용 계약상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라며 삼성물산을 상대로 7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에버랜드 측은 시각장애인에게 놀이기구의 이용을 제한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이 사건 놀이기구들을 타고 내릴 때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며,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탈출 및 구조의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놀이기구들이 모두 고속주행, 높은 고도에서의 낙하, 360도 회전, 예측할 수 없는 회전운동, 다른 놀이기구와의 충돌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어서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상황인지 및 반사적 방어행동의 속도가 느린 시각장애인들에게 놀이기구 탑승 중 더 큰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버랜드에서의 현장검증과 실험결과로 에버랜드의 주장이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실제 검증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은 별다른 이상 없이 놀이기구들을 이용할 수 있었고, 비상탈출 과정에서도 정상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놀이기구들의 운행 중 탑승자가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상태와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신체에 받는 물리력(중력가속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감정결과도 나왔다.

이 같은 검증과 결과 등을 바탕으로 1심은 지난 2018년 10월 김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이 상존하는 놀이기구를 운용하는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존재하고,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사건 놀이기구들 이용이 허용된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피고의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한편 2015년 제기된 이 소송은 1심 심리가 3년, 2심 심리는 5년 간 진행됐다. 과거 유사 사례가 없고, 감정 결과를 기다리거나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한 재판 공전이 원인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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