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세대로만 구성된 동은 없지만, 특정 동에 주로 배정
드나듦 적은 고가단지선 ‘장기전세 세대’ 짐작 가능
서울시, 반쪽짜리 소셜믹스 지적에 지난해 동·호수 동시 공개추첨제 도입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장기전세 제도로 커뮤니티가 우수한 고가의 단지에 입주 기회를 받고도 차별이 두려워 계약을 포기한 한 사례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국내 공동주택 가운데 3.3㎡ 당 1억원을 최초로 돌파한 고가 공동주택 아크로리버파크에 장기전세 세입자로 당첨이 되고도 단번에 포기한 한 직장인의 사연이 온라인 내집마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 A씨는 올해 3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낸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보고 청약에 도전했다. 이후 청약신청, 서류심사, 당첨자 발표까지의 지루한 절차를 약 6개월 간 거쳤고, 당첨 사실을 확인했을 땐 이곳에서의 삶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학군 좋고, 직장과 가까우며 단지 내 커뮤니티가 우수하다는 평 때문이었다.

최근 사전점검을 위해 단지에 점검차 간 A씨는 아이와 함께 단지 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레 예비 이웃도 만났다. A씨의 딸아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데리고 온 한 할머니는 ‘처음 뵙네요. 이사오셨나요?’라고 물었고 A씨는 거리낌 없이 이사 올 예정이라 밝혔다. 할머니는 이후로도 ‘아이는 어느 어린이집 다니는지, 몇 동으로 이사오는지, 매매로 오는건지’ 등을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A씨는 그 질문에 거리낌 없이 전세이고 몇 동이라고 얘기하니 할머니가 자신의 아이와 놀고 있던 손주를 데리고 이동했다고 한다.

찝찝한 마음에 A씨는 장기전세 모집공고를 확인해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해당 단지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소셜믹스 정책에 따라 임대세대로만 이루어진 동은 없다. 다만 장기전세 입주자들은 특정 동에만 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A씨는 “해당 동은 과거 재건축 시절부터 조합원들이 많이 보유하고 거주하는 것이라, 해당동에 전세왔다고 하면 입주민들끼리 장기전세 세입자라는 판단이 서는 듯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주변 지인을 통해 확인해보니 엄마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등 학부모 집단에서 대놓고 차별한다더라. 아이가 정서적, 경제적 차별을 느낄 일상이 염려돼 결국 입주를 포기했다”고 사연을 전했다.

아크로리버파크 인근의 서초구 잠원동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역시 단지는 더하다. 101~108동까지 있지만 특정동 세대 전체가 임대 세대로만 구성된다. 올해 SH공사가 낸 장기전세 모집공고를 보면 강남구 역삼동 래미안 그레이튼과 논현동 아크로힐스논현도 임대세대는 특정동에만 배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셜믹스가 장기전세주택에서 처음 도입됐다. 재건축, 재개발 등의 정비사업을 할 때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주택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지어야 하는데, 이를 지방자치단체가 조합으로부터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파트 단지를 설계할 때 몇 개 동의 아파트를 별도로 임대 아파트로 해 분양 아파트와 함께 조성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동 내에서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섞어서 짓는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세입자는 임차를 두려워할 정도로 차별이 있어 반쪽자리 소셜믹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서울시는 공공주택 소셜믹스 완전구현을 위해 지난해 동호수 추첨 공개추첨제 실시를 밝혔다. 그동안은 분양세대를 우선 배정한 후 남은 세대에 공공주택을 배치했는데, 앞으로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에서는 전체 주택을 대상으로 분양과 공공주택 세대가 동시에 참여해 추첨하는 것이다. 임대세대를 별도의 동이나 라인으로 분리하거나 차로변, 북향 등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배치해 편견이나 차별이 발생하는 일을 최소화하겠단 취지다. 다만 기존에 지어진 공동주택에 대해선 여전히 특정 동, 라인으로 구분지어 차별이 생기기도 한다.

한편, 공공임대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장기전세’ 주택이지만 장기거주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지적한다. 국산 중소형 세단 자동차도 3000만원이 넘는데, 현 입주규정에 따르면 이에 준하는 자동차를 보유하면 재계약 시점 시 퇴거해야 한다. 또한 최대 20년까지 거주(준공시점으로부터 최대 20년) 가능하지만 20년 동안 소득은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하니 차도 바꿔선 안되고, 자산증가를 위한 투자도 쉽지 않다.

공공임대를 준비 중인 한 직장인은 “장기전세 주택을 내집마련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쓰고 싶지만 거주하는 동안 차도 못 바꾸고, 투자도 안 되니 장기임대가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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