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사업 매각하면 경쟁력 손실, 통합 후 회복 어려워
합병 무산 시 구조조정 불가피···내달 2일 이사회 재개 전망

아시아나항공의 A321-200 항공기. /사진=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의 A321-200 항공기. / 사진=아시아나항공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대한항공 편입에 관한 안건을 논의했지만 성과없이 정회하며 기업의 앞날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전날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이사회를 열었지만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정회했다.

이사회는 유럽연합(EU)에 제출할 기업결합 심사 관련 시정조치안과 화물사업 매각안에 대한 결론 도출을 시도했지만 구성원 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정관상 구성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안건을 가결시킬 수 있다. 앞서 화물사업 매각에 반대해 온 진광호 안전보안실장(상무)가 지난 29일 돌연 사임한 후 5명으로 축소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홀수의 인원임에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양사 결합의 승인국 중 한 곳인 EU는 승인 조건 중 하나로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내걸었다. EU는 국내 항공시장에서 양사가 국제선 화물시장 점유율 65%로 과반을 차지한 점을 두고 경쟁제한 우려를 제기했다.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승인 당국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충족해 합병 성사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전날 이사회를 열어 EU에 제출할 시정조치안과 화물사업 매각 등 안건을 의결했다.

하지만 화물사업 매각 건을 두고 아시아나항공 노조, 전 사장단 등 일부 구성원들이 반대하며 합병절차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국에 화물사업이 아시아나항공 실적에 크게 기여했고 30여년 이상 전개돼 오며 글로벌 입지를 갖췄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광석 상무가 사임한 것도 화물사업 매각 반대 여론을 대표하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통합 후 화물사업의 경쟁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현재 EU가 양사의 화물시장 점유율을 걸고 넘어졌기 때문에 합병 후 사업 규모 회복을 시도할 때 다시 한 번 제동이 걸릴 소지가 남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날 공시를 통해 “30일 이사회를 개최해 현재 진행중인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하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에 대해 검토했지만 표결을 완료하지 못했다”며 “해당 안건에 대한 이사회 속개일자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대한항공 본사. / 사진 = 대한항공
서울 강서구 하늘길 대한항공 본사. /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 “EU만 넘으면 된다”···내부절차 의연히 진행

대한항공은 기업결합 심사를 위한 내부 절차를 차질없이 진행하는 등 의연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후 미국, 일본 등 남은 두 승인국의 심사가 원활히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에 이번에 EU 당국의 승인을 얻는 것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EU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나면 기업결합 심사의 관건인 경쟁제한 우려 요소가 불식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서다.

대한항공은 앞서 결합 승인국 11곳의 심사를 거치며 양사 중복 노선 일부에 대해 향후 운수권을 타사에 이전하는 등 조치하기로 했다.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구조조정하고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외부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앞섰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의 매각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중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 사진=산업은행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 사진=산업은행

◇정부도 “플랜B는 없다”···아시아나에 사실상 종용

정부도 대한항공의 기업결합을 지지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을 비롯한 기업결합 요건 충족을 아시아나항공에 사실상 종용하는 모습이다. 앞서 양사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던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결합 무산 가능성에 대비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국내 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간접 지원한 산업은행도 기업결합의 배수진을 친 상황이다. 산업은행은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8000억원치 매입해 자금 흐름을 일으켜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뿐 아니라 앞서 수출입은행 등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2조4000억원 규모의 기간사업안정기금을 투입해 경영안정화를 밀어줬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25일 진행된 국정감사에 참석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을) 살리기로 의결하면 또 국민의 혈세 또는 공적 자금이 얼마나 투입될지 알 수 없다”며 “(합병 관련) 플랜B는 없다”고 밝혔다.

화물기로 개조한 항공기를 다시 여객기로 복원하는 모습. / 사진=아시아나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화물기로 개조했던 항공기를 다시 여객기로 복원하고 있다. / 사진=아시아나항공

◇“죽으란 법 없지만”···화물사업이냐 인력이냐 기로

정부와 대한항공을 비롯한 아시아나항공 내 일부 여론의 기대와 달리, 이사아나항공 이사회의 향방은 불투명한 실정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 매각에 반대해 합병이 최종 무산되더라도 기업이 일정 기간 침체될 뿐, 명맥은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7월 채권단에 단기 차입금 7000억원을 상환하는 등 수익 창출력을 입증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의 주요 운수권을 외부에 넘기지 않아도 돼, 일부에서 제기하는 국부 유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 “합병 무산 시 아시아나항공이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걸어가겠지만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기업 생존을 위한 고육책으로 사업 매각을 가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채무가 여전히 많아 재무건전성 회복에 오랜 기간이 걸리고, 최근 고물가·고금리 기조로 인한 경기 둔화가 여행 수요에 악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악재로 꼽히는 형국이다.

향후 아시아나항공이 합병 무산 후 채무불이행 상태를 피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자구책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유일한 실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을 안고 인력과 기재 등 자산을 희생하는 셈이다. 이 같은 예상도 화물사업을 울며 겨자먹기로 매각할 수밖에 없는 명분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양사 결합이 이뤄지면 대한항공의 고용 유지가 약속된 만큼, 인력과 이를 투입할 기재 등 자산을 지속 보유할 수 있는 점도 이로운 요소다. 이는 대한항공이 지난 2021년 산업은행과 체결한 투자합의서를 통해 의무화한 사항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이 이를 어기고 합병 후 고용을 유지하지 않으면 5000억원의 위약금을 물어내고 최고경영진이 물러나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과 인력을 두고 갈림길에 선 모양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내달 2일 이사회를 재개해 전날과 같은 사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