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치, SUV·고급차 판매 호조 덕분···전기차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자금 확보 원활
외국기업들 투자 철회할 때 양사는 ‘독야청청’
전기차 수요 둔화세···“성장세 잘 이어가야”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연간 영업이익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연간 영업이익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기아가 올해 불확실한 업황 속에서도 현대자동차와 함께 사업 수완을 발휘한 결과 연간 20조원의 영업이익을 업력 최초로 돌파하며 ‘올곧게’ 성장하고 있다. 양사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선두권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해 나가기 위한 실탄을 성공적으로 마련하게 됐다.

기아는 27일 3분기 컨퍼런스콜을 열고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72.9% 증가한 2조8651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23조1616억원에서 10.3% 증가한 25조5454억원을 기록했다. 기아는 지난 분기 호실적을 거둔 요인으로 판매실적 확대, 평균 판매가 인상, 원자재 가격 하향 안정화, 우호적 환율 등을 꼽았다.

기아의 지난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9조1421억원으로,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 누적 영업이익(11조6524억원)과 합쳐 20조794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고의 연간 영업이익(17조529억원)을 올해 들어 세 분기 만에 갈아치웠다.

기아는 지난 세 분기 동안 최고실적을 이어올 수 있었던 요인으로 친환경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부가 차종 판매 성과의 확대를 꼽았다. 동시에 고환율 기조 속에서 해외 사업으로 외화를 많이 벌어들인 덕분에 수익성을 대폭 높였다. 한편 지난 3분기 세타Ⅱ엔진 리콜 비용을 재무제표에 계상한 데 따른 기저효과로 올해 매우 큰 폭의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기아가 12일 경기도 여주에서 EV데이를 열고 EV3, EV4, EV5를 공개했다. / 사진=박성수 기자
기아가 지난 12일 경기도 여주에서 EV데이를 열고 EV3, EV4, EV5를 공개했다. / 사진=박성수 기자

◇기아, 5년간 미래사업에 32조 투자···재원 원활히 마련중

기아는 그간 성과로 현재 주력 중인 전기차 사업의 재원을 비교적 원활하게 마련해 온 것으로 분석된다. 기아는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전기차 생산 거점 8개 구축, 2030년 전기차 160만대 판매 등을 수치적 목표를 달성해 현대차와 함께 ‘글로벌 톱 3’ 전기차 업체로 발돋움하는 목표를 세웠다.

기아는 ‘전기차의 대중화’를 추진해 판매 실적을 늘리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사업 이윤을 증대시켜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일환으로 현대차에 앞서 EV3, EV4, EV5 등 3만5000~5만달러 가격대의 중형·소형 전기차를 신규 출시해 유럽, 동남아 등 여러 시장을 동시다발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동시에 제품·서비스 수준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소프트웨어(SW), 배터리 등 전기차 핵심 분야의 역량을 개선하는데 적극 투자 중이다. 전기차 확산에 필요한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북미 NACS 같은 현지 충전 규격을 적극 내재화하는 한편 해외 기업과 협력해 충전소를 확충할 계획이다.

기아의 이 같은 전기차 사업 전략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 기아는 지난 4월 개최한 CEO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5년간 3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앞서 발표한 2022~2026년 5년간 투자하기로 계획한 28조원보다 4조원 늘어난 수치다.

기아가 이 중 전기차 부문에 얼마나 투자할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과거에 비해 미래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해석된다. 기아의 우수한 이윤 창출력은 전기차 사업 계획을 더욱 구체화하고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북돋우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부사장)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이번 실적은 그간 기아가 강력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브랜드 효과 강화를 지향하면서 활동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아 전기차의 경쟁 상대가 전기차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차, 내연기관차라고 생각하고 경쟁력 확보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EV9이 양산되고 있다. / 사진=기아
경기 광명시에 위치한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EV9이 양산되고 있다. / 사진=기아

◇폭스바겐·혼다가 전기차 투자 미룰 때 현대차·기아는 ‘고수’

기아가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최근 일부 외국 기업과 달리 당초 수립한 전기차 사업 전략을 현재 고수하고 있는 점은 경쟁사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일부 외국 기업들은 최근 경기 침체 조짐으로 인해 신차 판매 추이가 악화할 가능성에 예의주시하며, 전기차 관련 사업 계획을 수정했다.

혼다는 최근 미국 GM과 함께 오는 2027년 출시하려던 소형 전기차의 개발 과정을 중단했다. 당초 GM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얼티엄(Ultium)을 기반으로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전기차 시장이 급변하면서 해당 모델의 경제성이 당초 파악한 수준보다 악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양사가 업황 흐름을 따르며 조속한 결단을 내리긴 했지만, 이는 전기차 시장의 향후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폭스바겐도 당초 독일 볼프스부르크 바르메나우에 21억달러(약 2조8300억원)를 들여 전기차 생산라인을 설립하려다 지난달 말 무산시켰다. 고물가 기조 속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는 점을 고려한 결단인 것으로 분석된다. 공장을 신설하지 않는 대신 폭스바겐은 기존 공장의 내연기관차 생산 역량을 전기차 라인으로 전환해 공급 계획을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현대차·기아가 기존 전기차 사업 계획을 이어가고 있는 점만으로 사업 수완이 더욱 부각되는 모양새다. 기아는 현재 포드, 볼보 등 해외 유력 업체들이 신축한 전기차 전용 공장에서 차량을 출고하느라 수익성이 악화한 점을 목격하고도 오히려 기존 전기차 전용 라인 구축 계획을 밀어붙일 정도다.

정성국 기아 IR담당(상무)은 “전기차의 수익성은 단순히 차급 뿐 아니라 스케일(생산규모), 부가가치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며 “기아는 광명에 지을 전기차 전용 라인에서 스케일을 키우고 고사양 트림을 양산·판매하는 전략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가 불투명한 전망이 제기되는 전기차 시장에서 각종 리스크를 극복하고 입지를 강화해나가려면 사업 경쟁력을 꾸준히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양사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최상위 수준의 입지를 구축한 점은 긍정적인 요소라는 분석이다.

허진 인천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전기차 수요가 최근 둔화한 것은 잠깐일 뿐이고 시장은 결국 앞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며 “현대차·기아가 현재 흐름대로 현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이미지와 기득권, 기술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확실한 업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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