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 추가해 CEO 유고 상황 '메뉴얼' 보강
전 대표, 검찰 조사 받아···배임 적용 가능성
'기소되지 않더라도 향후 상황 대비' 관측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 / 사진=삼성생명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삼성생명이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해 최고경영자(CEO)가 직무수행 불가 상황에 대비한 절차를 추가해 관심이 모인다. 일각에선 삼성생명이 10년 전 콘도휴양업체 아난티와의 거래로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가 검찰의 수사받은 일을 계기로 향후 CEO 유고(有故) 상황에 대비한 메뉴얼을 더 구체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최근 지배구조 내부규범 개정을 통해 34조의 5항을 새로 추가했다. 34조는 CEO가 유고나 부재 시 취해야 할 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CEO가 건강상 이유나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이상의 제재를 받는 등 직무수행이 영구적으로 불가한 경우 삼성생명은 직무대행자를 세우고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해야한다. 

그런데 기존 내규에선 경영승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시행해야 하는 행동에 관련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이에 개정을 통해 “경영승계 절차가 불가피한 사유로 지연되는 경우, 그 사유와 선임 시까지의 최고경영자 대행자, 회사운영 및 향후 최고경영자 선임 일정 등을 즉시 공시해야 한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CEO 유고 시 취해야 할 메뉴얼을 더욱 구체화한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개정은 전 대표가 ‘삼성생명-아난티’ 거래 혐의로 혹시라도 임기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올해 초 검찰은 지난 2009년 6월 아난티가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땅과 건물을 매입한 이후 삼성생명에 되파는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부당한 이익을 취한 정황이 있다는 금융감독원의 신고를 받고 수사를 진행했다. 

전 대표는 당시 투자심의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이에 검찰은 올해 5월 초 전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삼성생명이 아난티와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전 대표를 포함한 투자심의위원들이 제대로 검증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난티는 2009년 4월 3일 해당 부동산을 고(故)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으로부터 500억원에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이후 잔금을 치르기 전인 같은 해 6월 22일 삼성생명과 ‘준공조건부 판매 계약’을 맺으며 약 2배에 가까운 970억원에 되팔았다. 그런데 당시 계약서에는 아난티가 토지에 건물까지 지어 판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양측은 이를 변경해 2010년 12월 조기에 부동산을 인도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이 시세보다 수백억원 비싼 값에 토지를 사들였다는 의혹이 일었다. 금감원이 이를 신고한 것이다. 

업계에선 검찰의 조사 결과 전영묵 대표가 부정거래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배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 7월 투자심의위원들 외에도 삼성생명 전직 임직원들의 사무실과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최근 관련 조사를 마치고 기소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전 대표가 검찰로부터 기소가 될지 미지수다. 더구나 기소된다고 하더라도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도 판단하기 어렵다. 삼성생명은 전 대표 등 당시 투자심의위원회 위원들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검찰에 전달했다. 투자심의위원들이 당시 브로커 역할을 한 혐의를 받는 전 임직원들의 ‘농간’으로 인해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단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표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만큼 삼성생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는 CEO가 실형을 받거나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대응 메뉴얼을 더 보강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생명은 아난티 관련 혐의에 대해 많이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CEO가 조사를 받은 만큼 CEO 부재 상황을 고려 안할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