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보, 계리적 가정 변경 710억원 손실
예실차 손실 적었지만 손실 규모 커
현대해상 등 나머지 손보사 실적 크게 깎이나

(시계방향으로)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서울 본사 전경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대형 손해보험사 중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적용 후 첫 실적 발표를 한 KB손해보험이 대규모 손실을 입으면서 나머지 손보사들의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일부 대형사들의 손실 규모가 예상보다 크면 업계 실적 순위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단 예상이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손보의 3분기 보험영업이익은 78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867억원) 크게 줄었다. 다만 투자영업이익이 세 배 넘게 늘어나면서 3분기 누적 당기순익(6803억원)은 작년 동기 대비 2.8% 감소하는데 그쳤다.  

KB손보의 보험영업이익이 급감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정한 계리적가정 가이드라인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KB손보는 당국 지침에 따라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손해율, 해지율 등 계리적 가정을 수정한 결과 3분기 누적 기준으로 710억원(세전 기준)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KB손보는 당초 발표와 달리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을 ‘전진법’으로 적용한 결과 전년 동기와 비교해 보험영업이익이 더 많이 감소한 것으로 관측된다. 

오병주 KB손보 보험총괄 상무는 이날 실적발표회에서 “당국의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3,4대 실손보험에서 보유계약 손실이 발생해 세전 710억원의 일회성 손실이 발생했다”라며 “다만 KB손보가 당초 수립했던 경영전략에서 예상했던 규모다”라고 말했다.    

올해 새 회계제도(IFRS17)가 도입되자 보험사들이 미래이익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부풀리기 위해 계리적 가정 값을 자의적으로 정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손보사들이 실손보험의 손해율 가정 값을 낙관적으로 산출해 CSM을 과도하게 늘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손보험 계약 갱신 시 보험료를 크게 올릴 것으로 예상해 향후 손해율이 대폭 낮아진다고 가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계리적 가정 값을 보수적으로 잡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이다. 

업계에선 가이드라인의 여파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KB손보는 올해 상반기까지 기록한 예실차 손실(발생사고부채 조정 포함)은 112억원으로 금액이 많진 않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의 여파는 예실차 손실이 많이 발생한 곳에서 두드러질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예실차는 장기보험 계약에 따른 예상한 보험금·사업비와 실제 발생한 보험금·사업비의 차이를 말한다. 예실차 손실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계리적 가정을 낙관적으로 산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실차 손실이 크지 않은 KB손보도 가이드라인으로 실적이 많이 깎이면서 나머지 대형 손보사들도 안심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보험사들은 일제히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손실 규모를 줄이려 했는데도 결과적으로 실적이 크게 깎인 것이다. 손보사 빅4 중 KB손보를 제외한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은 다음달 초에 실적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현대해상의 실적이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해상은 3분기 누적 기준으로 1800억원의 대규모 예실차 손실을 입었다. 4대 손보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DB손보는 370억원의 예실차 이익을 거뒀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란 평가다. DB손보는 전체 보험부채 가운데 CSM이 차지하는 비율이 업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CSM 규모가 크다. 다만 삼성화재는 예실차 이익(1533억원)을 많이 거둬 제도 변경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DB손보와 메리츠화재의 2위 싸움도 더욱 치열해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메리츠화재는 올 상반기 순익은 8390억원으로 대형사들을 제치고 전체 손보사 가운데 3위를 기록했다. 2위인 DB손보(9180억원)와 약 800억원 차이다. 그런데 메리츠화재는 상반기 1550억원의 대규모 예실차 이익을 거뒀다. 보험부채 규모를 고려하면 메리츠화재가 업계에서 가장 큰 이익을 거둔 것이다. 이에 메리츠화재는 당국의 지침을 적용해도 손익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DB손보의 손실이 예상보다 크면 올해 순위가 뒤집힐 확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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