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준비 부족 우려에 與 유예 연장안 발의
野·노동계 부정적 기류, 연내 입법 난관···“법개정 무산시 정부 처벌 자제 가능성”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임박했지만, 산업 현장에선 여전히 준비가 미흡하단 지적이 나온다. 경영계를 중심으로 유예 연장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여당도 관련 법안을 내놓았지만, 야당과 노동계를 설득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 개정이 불발할 경우 정부가 유예 효과를 낼 우회적 방법을 쓸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고 예방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했으며,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한다.

그런데 경영계를 중심으로 아직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확대 실시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단 지적이 제기된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과 달리 중소기업은 복잡한 중대재해법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고, 인력난을 겪는 와중에 안전보건관리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고 비용부담 또한 크단 지적이다. 영세기업의 경우 대표가 대부분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어 상황에 따라 폐업 등 타격이 상당하단 우려도 있다.

실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 8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대상기업 80%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고, 85.9%는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단 의견을 제시했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현행법대로 시행되면 가뜩이나 대내외 여건 악화로 힘겨운 중소기업이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 표=정승아 디자이너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 표=정승아 디자이너

정부 내에서도 시행 확대를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확대 적용 대상 사업장이 83만곳에 달하지만, 관련 예산, 인력 확충이 미진한 점을 감안했을 때 추가 유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전담 수사관 확보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일각에선 고용부가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한 유예 연장을 염두하고 있는 게 아니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법률 개정 사항으로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고용부에서 개정안을 올린 건 없다. 다만, 의원 입법이 발의된 상태라 앞으로 부르면 같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며 “법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유예를 전제로 감독관을 확보하지 않은다는 건 말이 안된다. 고용부 입장에선 유예가 되더라도 뽑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서도 여권을 중심으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기간을 연장해야 한단 의견이 나온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해 2026년 1월 27일부터 시행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원내 과반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유예 연장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 내에선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환노위 민주당 관계자는 “당론으로 결정이 된 사안은 아니지만 다수 의원들은 유예 연장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사업장 전담 인력 등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요구하는 여러 체계, 준비해야 할 부분이 힘들 순 있으나 2년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며 “고용부가 2년 동안 뭘 했는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시행할 건 하고 지원 등을 늘려야 한단 입장”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최근 관련 서명을 받기 시작하는 등 반대 입장이 명확하다. 전체 중대재해의 80% 가량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점을 주목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중대재해를 실제로 줄여보잔 취지로 법이 만들어졌다면 50인 미만 사업장도 당연히 법적으로 가는게 맞다”며 “다만, 중소기업들이 실제 안전 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 노력해야 했는데 그걸 지금까지 못했다고 또 미룬다면 하세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책을 강화하고 법 적용은 미뤄선 안 된다”며 “미루면 우리 사회에서 중대재해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이 쟁점이 큰 사안임을 감안할 때 여야가 연내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을 미루겠단 방침을 세우면 법률 개정이 아닌 우회로를 택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노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50인 미만 사업장 문제는 정부 시행령으로 하긴 어려워 보이지만, 워낙 법을 잘아는 정권이라 편법을 쓸 가능성이 완전히 없진 않다고 본다”며 “실제 단속을 안하거나 처벌 주체인 검찰이나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처벌 의사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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