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가 139만원 Z플립5는 0원···Z폴드5는 209만원에서 90만원
추석 앞두고는 통신사 직영 대리점에서도 보조금 미끼로 추가 서비스 끼워 팔아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매장 전경 / 사진=이승주 인턴기자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상가 매장 전경 / 사진=이승주 인턴기자

[시사저널e=이승주 인턴기자] “KT 가족결합 상태에서 2년 약정하고 11만원 요금제를 사용하면 갤럭시Z플립5는 공짜에요. KT 번호이동에 11만원 요금제를 2년 동안 사용하고 KT 제휴 국민카드 월 30만원 이상 사용하면 갤럭시Z폴드는 90만원입니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지난 26일 불법 보조금을 끼워 휴대폰을 값싸게 파는 것으로 유명한 이른바 ‘성지’를 찾았다. 올해는 ‘추석 대란’ 없이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물밑 보조금 경쟁은 치열했다. 256GB 기준 갤럭시Z플립 출고가는 139만9200원. 여기에 불법보조금이 붙어 0원까지 내려갔다. 출고가 209만원7700원 갤럭시Z폴드도 최저 90만원에 구매가 가능했다.

통신사 직영 대리점마저 추석 전에 휴대폰을 바꾸라며 급하게 가입을 권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요 없는 부가 시스템까지 설치하는 대신 보조금을 15만원 더 얹어주기까지 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휴대폰 가격을 두고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가 옅어졌다.

◇ 스마트폰 시장 침체에 적막한 매장···불법보조금은 ‘여전’

연휴를 앞두고 찾은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폰 집단 상가는 추석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만큼 적막했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다가 비까지 내린 탓에 휴대폰을 구매하러 온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50여 개의 휴대폰 매장 사이를 지날 때마다 “구경하고 가세요”, “진짜 싸니까 가격만 물어보고 가세요”라는 둥의 호객 행위가 걸음을 붙잡았다.

간절한 부름에 이끌려 매장 판매대 앞에 앉으면 곧바로 어떤 기종을 원하는지,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는지 질문이 시작된다. 다만 가격은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서 답해야 한다. 모든 매장에는 ‘가격 언급 절대 금지’란 불문율이 작동했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이후 불법 보조금 신고를 피하기 위해 등장한 휴대폰 집단상가만의 문화다. ‘공시 지원금’을 받을 것인지 ‘선택 약정’으로 할 것인지도 선택해야 했다.

통신사, 요금제, 기종별로 지원 금액은 달랐다. 갤럭시 Z폴드5 기준 KT에서 9만원 요금제(초이스 베이직), SK텔레콤에서 8만9000원 요금제(5GX 프라임)를 사용할 때 받는 공시 지원금은 15만원이다. LG유플러스에서 8만5000원 요금제(5G 프리미어 에센셜)를 사용한다면 15만1000원 공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단통법에 따르면 판매·대리점은 공시 지원금의 15%까지 지급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KT에서 9만 원 요금제를 선택한 후 Z폴드5를 산다면 공시 지원금에 추가 지원까지 최대 17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넘어 할인되는 금액은 모두 불법 보조금이다.

갤럭시Z폴드5를 사고 싶다고 말한 뒤 계산기를 눌러 숫자 ‘120’을 표시했다. 고개를 저은 판매점 직원은 다시 계산기에 이곳 시세를 찍어 보여줬다. KT에 11만원 요금제(초이스 스페셜)로 번호 이동을 한다고 했을 때 기기 값은 139만원. 나온 지 두 달이 채 안 된 갤럭시 Z폴드5의 출고가는 209만7700원이다. 20만1000원 공시 지원금에 50만원가량의 불법 보조금이 지원되어 총 70만원 넘게 할인된 것이다.

현금으로 사는 경우 이날 ‘성지’에서 갤럭시Z폴드5 시세는 140만원대였다. 불법 보조금 50만원가량을 추가로 할인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통신사든 11만원, 10만원 대의 초고가 요금제를 4~6개월간 유지하고 OTT 플랫폼이나 보험 등 부가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기본으로 붙는다.

조금 더 깎을 수 없겠냐고 물으니 ‘카드’를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는 ‘다섯 단계’를 거쳐 값이 할인된다. 첫 번째로는 공시 지원금을 뺀 가격으로 합법적 구매 가격이다. 두 번째 단계부터 불법 보조금이다. 이른바 ‘매장할인금’으로 판매점에서 자체적으로 할인해 주는 금액인데, 통신사와 제조사로부터 받은 판매 장려금으로 충당한다. 세 번째는 인터넷 가입이나 가족 결합 할인이다.

네 번째 단계부터 판매점 직원 A씨는 “고객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라는 말을 덧붙인 채 설명했다. 앞서 말한 ‘카드’였다. 통신사 신용카드를 만들어 월 30만~100만원 이상을 사용하면 할인해 준다는 것이었다. 카드를 만들면 추가로 50만2000원 정도를 불법 보조금으로 지원해 준다. 마지막 단계는 ‘단골 할인’이다. 휴대폰 약정은 2년이지만 3년 동안 할부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약정이 끝난 뒤에 다시 해당 매장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반납하면 1년 남은 할부 원금을 모두 제하겠다는 얘기다.

A씨는 “쿨하게 맞춰드리는 것”이라며 위 단계를 모두 거친다면 90만원까지 가격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불법 보조금 액수가 109만원까지 늘어난 것이다.

◇ 페이백도 기승···‘단골 할인’ 약속하고 ‘먹튀’도

테크노마트의 다른 판매점 점주 B씨는 “‘단골 할인’을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2년 후에 매장을 다시 찾았을 때 판매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어린 직원들은 번호를 바꾸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10년간 이곳에서 휴대폰 판매를 했다는 B씨의 매장에는 판매업 등록증 등이 여러 개 전시돼 있었지만 증명서에 대표자 이름은 없었다.

휴대폰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대학생 이창민씨(25)는 “이렇게 싸게 판매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가 원하는 휴대폰 기종은 갤럭시 Z플립5이었는데, KT 가족 할인에 KB신용카드를 새로 만들고 11만원 요금제(초이스 스페셜)를 쓴다는 조건을 달면 단 0원으로도 구매가 가능하다. 이씨가 “추석 지나 연말 정도에 바꿀 생각”이라고 말하자 판매점 직원 C씨는 “오늘 시세는 0원인데 그때 가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며 “그냥 지금 가져가는 게 이득”이라고 설득했다. 이씨는 “지금 당장 바꿀 생각은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부모님과 함께 왔다면 바로 구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사 직영 대리점에서 제시한 보조금 금액. 카메라+인터넷 가입 시 45만원이 할인된다.  / 사진=이승주 인턴기자
통신사 직영 대리점에서 제시한 보조금 금액. 홈CCTV+인터넷 가입 시 45만원이 할인된다. / 사진=이승주 인턴기자

불법 보조금의 범주에는 테크노마트만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통신사 직영 대리점을 찾은 기자에게 대리점 매니저는 “추석 전에 잘 왔다”며 연휴 기간 시작 전에 가입해야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지’에 있던 계산기는 직영 대리점에서도 등장했다. 매니저는 할인되는 금액을 말없이 계산기를 통해 보여줬다. 계산기에 찍힌 숫자는 60. 8만9000원 요금제(0청년89)를 쓰면 나오는 공시 지원금 15만원 외에 불법 보조금이 45만원 추가되는 셈이었다. 이는 ‘고객 선납금’이라는 금액으로 표기됐다.

직영 대리점에서는 고가 요금제 가입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 및 TV 가입 기간을 잘 맞춰줄 것을 강조했다. 또 ‘도어 가드’라는 홈 CCTV를 6개월간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매니저는 “그냥 집에 설치만 하고 방치하셔도 된다"라며 도어 가드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15만원이 추가 할인된 것이라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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