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개발 발표 이후 땅값 오르고 매물 감춰
고밀개발 개발 차질 우려에 “가능한 방법 중 하나” 언급
공원 지정 시 감정가로 강제 매입 가능해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개발을 앞둔 세운상가 일대에 땅값 상승 조짐이 보이자 ‘토지 수용’이라는 강경책을 꺼내 들었다. 수용은 서울시가 직접 땅을 사들여 감정가로 부지를 강제 매입하는 방식이다. 상가 매물이 비싸지거나 거의 안 나오는 상황에서 고밀개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오 시장은 지난달 북미 출장 중 기자 간담회에서 세운지구 일대 땅값이 올라 상가 매입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예정인지 묻는 질문에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확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수용하는 방식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걸 하겠다고 말하면 큰 뉴스가 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도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세운지구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 종로, 남쪽 퇴계로와 접한 직사각형 부지다. 부지 면적만 44㎡에 달해 서울 사대문 안에서 개발되는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현재 세운상가를 포함한 7개 건물군(세운·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 양옆 8개 구역에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오 시장은 녹지생태도심 선도사업 일환으로 7개 건물을 허물어 그 자리에 1㎞ 길이의 녹지보행축을 조성하겠다고 지난해 4월 밝혔다. 또 양 옆으로 초고층 빌딩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시 발표 이후 개발 기대감이 커지며 세운상가군 내 상가는 물론 주변 땅값이 급등했다. 일부 토지주들이 감정가보다 배 이상 비싼 가격을 요구하거나 매물을 내놓지 않으며 사업 진척이 더딘 상태다. 민간 개발업체에 세운상가군을 매입하게 한 뒤 기부채납을 받는 방식으로 녹지를 조성하려던 서울시의 계획도 차질이 생겼다. 매매가가 크게 뛰거나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으면 개발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가 일대 상가를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도시계획시설 상 세운상가군을 공원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공원으로 지정하면 서울시는 감정가로 일대 상가를 수용할 수 있다. 앞서 2009년 가장 북쪽에 있던 현대상가가 이 같은 방식으로 공원화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6년 추진한 세운지구 개발사업 조감도 / 사진=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6년 추진한 세운지구 개발사업 조감도 / 사진=서울시

세운지구는 오 시장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개발 움직임이 시작된 건 오 시장 재임 시절인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다. 오 시장은 당시 취임 이전부터 세운지구를 ‘개발공약 1호’로 내세울 만큼 개발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2009년엔 작년 4월에 내놓은 계획과 비슷한 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했다. 세운상가군을 전면 철거하고 그 자리에 종묘와 남산을 잇는 폭 90m, 길이 1km의 녹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근 8개 구역은 최고 122m(36층) 높이의 주상복합을 건설해 코엑스몰급의 입체적인 도심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면서 사업은 2010년 무산됐다.

17년 만에 개발 기회를 맞이한 만큼 오 시장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운상가군은 지은 지 50년이 넘어 슬럼화됐지만 10년 넘게 개발이 미뤄져 왔다”며 “일대 개발이 오 시장의 오랜 숙원 사업인 만큼 수용 등 모든 수단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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