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기간 짧고 집계 방식도 허점 투성
“시장 왜곡 일으켜”···‘폐지론’ 목소리 커져
정책 효과 파악 위해 존치해야 한단 시선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국토교통부를 통해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계가 조작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조사 기간이 짧은 만큼 시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만 통상 주택 거래에 수개월이 소요되는 부동산 시장 특성상 이처럼 짧은 호흡의 통계는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94회 이상 통계 조작···“변동률 낮춰라” 압박도 

25일 감사원에 따르면 전 정부는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를 94회 이상 조작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동향은 국가공인통계로서 2013년 1월부터 발표해 왔다. 전주 화요일부터 그 주의 월요일의 동향을 조사해 매주 목요일 외부에 발표된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은 ‘확정치’(외부 공표 전 확정지표)를 보고하기 전 ‘주중치’(3일 간 주택시장 변동률 통계지표)와 ‘속보치’(7일 간 잠정 통계지표)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작성 중인 통계를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건 통계법 위반이다. 당시 한국부동산원이 주중 조사가 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12차례 중단을 요청했지만 청와대·국토부가 묵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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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예측치로 보고된 주중치보다 속보치와 확정치가 높게 보고되면 그 사유를 규명하라며 압박했다. 또한 주중치, 속보치 등을 불법적으로 사전 제공받은 뒤 집값 상승률 수치가 낮게 나오도록 주중치에 임의의 가중치를 적용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감사원은 전 정부가 부동산대책 발표가 잦았던 만큼 대책 발표 후 규제 효과가 커 보이도록 부동산원에 조작을 수시로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공인통계에 대한 조작 혐의가 드러나면서 주간 가격 통향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실거래가 없으면 호가로”···변동률 산정 방식 허점 투성 

주간 아파트 가격 통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계약부터 잔금 납부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부동산 거래 특성상 주간 단위 가격으로 공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집값 변동률이 0.01%에 불과한데도 집값이 ‘올랐다’와 ‘내렸다’를 언급해 시장 혼란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일부 지역의 10억원 짜리 아파트가 10만원만 올라도 ‘전주 대비 0.01% 상승했다’고 공표되는 식이다.

가격 산정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국부동산원은 300여명의 전문조사원이 비공개 표본주택을 정한 뒤 실거래 가격 정보를 조사해 지수를 산정한다. 문제는 표본주택의 실거래가가 없으면 인근 단지 거래나 호가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호가엔 가격을 더 받고 싶거나 더 내려서 팔고자 하는 매도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민간 대비 표본 수가 부족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은 2021년 주간 조사 표본 대상을 9400곳에서 3만2000여곳으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민간인 KB국민은행의 6만2000여곳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불필요하게 자주 발표하다 보니 시장 왜곡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호황기엔 거래량과 관계없이 부동산 호가를 높이려는 매도자들의 주관이 반영되면서 부동산 시장 과열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또한 중위권 가격을 중심으로 조사되다 보니 평형별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등 가격 왜곡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 효과 파악 위해 필요할 수도”

실효성 논란과 함께 조작 사실마저 드러난 만큼 정부는 해당 통계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통계 개선 검토를 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감사원에서 (주간 통계를) 94회나 조작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는데 그에 맞는 증거가 있으리라고 간주하고 엄격한 원칙과 그에 따른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부동산 정책 발표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주간 통계도 필요하단 시각도 존재한다. 주간 동향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정책 결과를 알기 위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정책 효과를 바로바로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인 만큼 폐지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감사 통계 생산에 정부 입김이 작용 못 하도록 막는 장치를 마련하고 집계 방식을 변경하는 등 신뢰도를 올릴 수 있는 개선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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