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단체 및 대법원 사실상 반대 “사형제 비해 (범죄자)기본권 침해가 덜한 형벌이라고 볼 수만은 없어”
개정안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해도 여전히 가석방 있는 무기징역 선고 가능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보다 피해자 기억해 달라며 실명 공개하는 상황, 법조계 및 사회가 부끄러워 해야

지난 8월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김혜빈씨의 영정이 걸려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김혜빈씨의 영정이 걸려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분당 흉기난동으로 끝내 숨진 스무 살 고(故) 김혜빈씨의 대학교 친구들이 가해자 최원종의 엄벌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습니다.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는 흉악범에 대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골자로 하는 요구사항들에 대한 서명을 모아 정부 등에 전달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같은 계획은 성사될 수 있을까요?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일까요? 

①무기징역 제도 이미 있지 않나요?

많은 이들이 ‘무기징역’을 곧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이해하고 계시는데요. 엄연히 다릅니다. 무기징역은 말그대로 ‘기한을 정하지 않는 징역’을 의미합니다. 출소날짜가 따로 정해지지 않아 평생 감옥에 있을 순 있지만 사실상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 심사를 받고 가석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10명 이상의 무기수가 이 가석방으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20년을 채우면 평생 감옥에 있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20대때 범죄를 저지르면 왕성한 40대에도 출소를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또 실제로 가석방 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보도된 바 있고요.

②‘가석방 없는 종신형’ 없어도 사형제도 있지 않나요?

우리나라는 ‘사형 폐지국’일까요 아니면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일까요? 정답은 법적으로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입니다. 과거엔 많은 흉악범들에 대해 실제로 사형집행도 해왔죠. 다만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국제엠네스티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기에 그 기준에 따라 사형폐지국으로도 불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선 사형을 잘 선고하지도 않거니와,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집행을 하지 않으니 유명무실한 형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화두로 나온 것이죠. 한 국가의 최고 형벌이 ‘20년 복역 후 가석방 심시 받기’인 것은 분명 흉악범죄를 막기엔 불안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화두를 꺼냈지만 이미 이전에도 도입 필요성에 대해선 이야기가 나왔던 사안입니다.

③대법원, 진보단체 등은 왜 반대하나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진보단체들의 주장을 보면 결국 범죄자의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것이 공통분모입니다.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를 하면 신체 자유를 다시 누릴 기회를 박탈당하고,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대법원은 또 사형제가 존치되는 상황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려면 검토를 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사실상 도입된다고 해도 가석방 있는 종신형도 유지된다?

사실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된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사례가 얼마나 나올지는 의문입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정부입법으로 추진될 예정입니다. 개정안을 보면 법원이 선고를 할 때 가석방이 허용되는 무기징역인지 여부를 함께 선고토록 해서 허용되지 않는 무기징역인 경우만 사실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법원에서 무기지역을 선고하며 계속 가속방 허용되는 형태로 하면 가석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⑤가해자 위주 벗어나 피해자 가족 위주 논의 필요성 有

결론적으로 고 김혜빈씨 친구들의 서명운동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도입돼야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논의 과정을 보면 피해자 가족들은 빠져 있는 모양새입니다. 한국사회는 특이하게 흉악범죄와 관련 가해자의 사정에 집중하고, 또 형벌시에도 가해자의 인권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와 관련 과거 일제시대나 군부독재시절 죄 없이 처벌받은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하는데요. 그 시절 억울하게 잡힌 이들과, 무차별로 칼부림하고 맘에 안 든다고 잔혹하게 연인을 죽인 이들의 사례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흉악범죄에 대해선 이제 좀 시대에 맞게 달리진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범죄자의 영구한 격리는 다른 모든 것들을 떠나 피해자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갖고 혹은 안심하고 생을 살아갈 결정적 조건이라고 합니다. 자기 딸이나 아들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국가에서 반성하는 것 같다고 풀어줘 가해자가 자유롭게 남은 여생을 즐기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은 2차 가해 수준이라는 지적입니다.

한 국가의 범죄 피해자 가족이 목숨을 잃은 딸의 사진과 실명까지 공개하면서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기억해 달라고 하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은 대한민국 법조계와 나아가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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