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와 회사의 분쟁, K팝만 문제가 아니다

[시사저널e=김동하 한성대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교수]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신뢰할 수 있는 제작사를 선택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방영된 지상파 간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앵커멘트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서 엔터테인먼트와 벤처 과목을 가르치면서 자주 다루는 이슈가 바로 회사와 아티스트와의 관계다. 매니지먼트나 에이전시 같은 소속사나 제작사와 아티스트의 관계, 법인과 개인의 관계 등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제작사를 선택할 권리'라는 아름다운 결말은, 어쩌면 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팝 아이돌은 모델이나 배우 등과 달리, 엄청난 시간과 비용 투자가 수반되는 고위험 고수익 분야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콘텐츠 강국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K팝이나 K콘텐츠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 학부모들도 취업과 진로 문제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작사 또는 소속사 즉 회사와 개인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는 잘 모른다.

매니지먼트 전속계약과 에이전시는 무슨 차이고, 프로듀서는 무슨 일을 하며, 감독, 연출, 대표의 권한과 책임은 어떤 것인지. 모호한 선입견들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이 소비자로서 느끼는 '역학관계'에 의한 선입견이다,

예를 들어 K팝은 제작사가 힘이 세고, 영화는 감독이, 드라마는 작가가, 방송은 PD가 힘이 세다는 식의 선입견 말이다.

당장 엔터테인먼트 과목 개강을 앞두고, 피프티피프티, 오메가엑스 등 급속도로 늘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분쟁을 어떻게 바라보도록 해야 할까.

계약과 제작,기획,투자 등 생태계는 물론이고 가처분소송이나 템퍼링(계약 상태에서 다른 계약을 유도하는 부적절한 접촉)같은 용어들까지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여론전과 소송전이 결합된 K콘텐츠의 최신 분쟁 트렌드를, 역학관계에 의한 선입견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선입견은 미디어의 선동에 휘둘리기 쉽고, 여론전의 향방은 법적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를 착취하는 회사' VS '회사를 착취하는 아티스트'

최근 K팝 소속사와 아티스트와의 분쟁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피프티피프티와 오메가 엑스, 판타지보이즈, 이달의 소녀 등 아이돌 그룹 뿐 아니라 이승기, 구혜선 등 배우를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대부분 아티스트와 제작사, 대표이사, 프로듀서, 작곡가, 기획사 등이 뒤범벅된 복잡한 분쟁들이다.

복잡하지만 뚜렷한 패턴은 있다. 업계 내 역학관계를 활용한 미디어 전쟁과 법적 소송이 함께 이뤄진다는 점이다.

'아티스트를 착취하는 회사'와 '회사를 착취하는 아티스트'. 어느 쪽이 더 호소력 있어 보이는가?

때문에 분쟁의 전면에 방송, 유튜브 등의 폭로와 제보 등 여론전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법적 분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입증과 반박을 위한 수많은 미디어의 녹취, 제보, 폭로 등이 뒤범벅되면서 미디어와 관계자 모두 피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타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속계약에 있어서 '신뢰관계 파탄'이라는 정성적인 조항은 전속계약을 깨뜨리는 근거로 활용되곤 하는데, 미디어만 보면 신뢰는 커녕 불신만 커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여론전에 투자자와 미디어까지 가담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지는, 복잡한 분쟁의 세상에서 소비자들이 휘둘리기도 쉬운 세상이다.

●뭔가 다른 '피프티 피프티' 분쟁

하지만 피프티피프티를 둘러싼 분쟁의 양상은 기존의 선입견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제작사라고 하면 역학관계에 의한 착취구조를 떠올리기 쉽고, 하물며 투자자라고 하면 단물만 빨아먹으려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쉽다. 분명 멤버들이 신뢰 파탄으로 전속계약 해지를 요청하고, 제작사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까지 한 게 사실인데, 아티스트들 뿐 아니라 방송국까지 '편파방송'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분명 이 사건은 대중들이 선입견에서 한발 더 나아간, 초유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분쟁을 접하면서, 일반인들이 가장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제작진'이라는 단어다.

피프티피프티는 어트랙트라는 원 소속사 및 제작사가 있고, 용역계약을 맺고 곡 작업을 했던 더기버스라는 회사가 있다. 더기버스의 안모 대표는 대 히트곡 <큐피드>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 저작권 협회에 등재돼 있다. (원 작곡가는 스웨덴 작곡가 3인이다.)

안 대표는 제작진이면서도 아티스트인 만큼, 이 문제는 제작사와 용역사, 제작사와 프로듀서 및 작곡가, 제작사와 멤버들의 문제가 얽힌 복잡한 이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부분은 엄연히 존재하는 소속사를 두고, 프로듀서와 피프티피프티 멤버들, 그리고 투자자 등도 소속사를 바꾸기 위해 함께 했는지, 즉 '템퍼링'의 여부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

지난 29일 법원은 멤버들의 계약 해지 요청을 기각했고, 멤버들은 복귀 또는 항소를 고민 중이라고 한다.

'템퍼링' 논란의 진실은 결국 밝혀지겠지만, 여론과 법의 길고 치열한 공방 속에서 흐릿해질 것이다. 대신 세계를 뒤흔드는 K팝 제작의 역사에 커다란 상처로 남을 가능성은 높다.

●영화, 드라마 업계는 예외?

제작사와 아티스트의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분쟁은 K팝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 드라마 업계에도 엄연히 기획사, 제작사, 투자사, 배급사 등이 존재하지만, 대중들의 선입견에는 감독, 배우와 플랫폼 만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역학관계 속에서 K콘텐츠의 제작 진영 곳곳에도 균열이 느껴진다. 과거 훌륭한 아티스트와 제작사들이 쌓아 놓은 토대 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 배우들도 종종 있다. 상업과 독립영화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무소불위의 행태는, 일부 작품들의 흥행성적이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과 무관치 않은 일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자본시장의 상식은 K콘텐츠 진영에서도 통하고 있을까.

'잘 되면 아티스트 탓, 안되면 제작사 탓'이라는 푸념은, 대중들의 선입견 속에서 기울어진 역학관계의 반증이다.

역학관계에 밀려, 잇단 참사의 책임을 떠맡은 하위 공무원들이 '권한은 적고 책임만 크다'고 푸념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이다.

K팝과 K콘텐츠의 위상은 걸출한 아티스트 뿐 아니라 위험을 무릅쓴 제작사, 투자사들이 함께 만들어냈다. 하지만 상식과 온정보다는 여론과 법의 역학관계가 판치는 지금, K콘텐츠의 미래는 꽤나 어두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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