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배터리 기업···검증은 주주 몫?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청사진을 그려내면 주가가 치솟는 산업군이 있다. 제품을 공개하지 않아도, 연구·개발(R&D)에 돈을 쓰지 않아도, 특허 하나 없어도 “2차전지 분야에 진출하겠다”는 기업의 포부만으로 주가 부양 효과는 충분하다. 신발 깔창 소재·고기 불판을 만들다가 뜬금없이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식이다. 

발포제 사업을 하는 금양은 지난 2021년 신규사업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에는 국내 세 번째로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차전지 산업에 뛰어든 지 1년 반만의 일이다. 아직 고객사를 찾진 못했지만 배터리 생산 공장은 지난 6월 상업 가동에 들어갔다는 게 금양 측의 주장이다.

금양뿐만이 아니다. 배터리사업에 진출하는 업체들은 지금도 꾸준히 등장한다. 상장사 가운데 1년 새 이차전지 관련 사업을 추가한 회사는 50여곳이 넘는다.

이들이 이차전지 관련 사업목적 추가 공시를 띄우면 어김없이 주가는 뛰었다. 고기 굽는 전기 그릴 등을 생산하는 자이글은 올해 초 이차전지 관련주로 주목받으면서 주가가 한 달 새 800% 넘게 올랐다. 금양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12만9600원을 기록해 1년 전인 1만200원 대비 12.7배가량 뛰었다.  

이차전지 광풍 현상에 빚을 내서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이차전지주에 대한 열기는 과거 바이오주 쏠림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코스피·코스닥 전체 거래대금의 50% 가량을 이차전지 관련 업종이 담당할 정도다. 

일단 특정 회사가 이차전지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만 하면 개미들의 '묻지마' 투자가 시작되는 꼴이다. 회사가 신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있는지,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했는지에 대한 검증은 나중이다. 

회사가 연구개발(R&D) 투자에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이차전지 관련 특허가 하나도 없어도 개미들의 돈은 쏠린다. 적은 돈으로 특허 없이 이차전지 사업을 추진한다고 해서 ‘주가 띄우기’성 사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상 배터리 산업은 제조 단계부터 잠재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제품별 최적화된 기술개발이 이뤄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생산단계 전반의 신뢰성 검증까지 마쳐야 비로소 납품이 확정된다. 그만큼 원천 기술부터 양산까지의 전반적인 기술력이 중요한 산업이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이 매년 연구개발비를 늘리고 경쟁사와 특허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국내 배터리 3사 중 한 곳은 사업보고서에 “배터리 산업의 속성상 승자독식의 특성이 강해 고객사와 긴밀한 기술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적었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기업이 추진하는 이차전지 사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신규사업의 경우 정기보고서를 통해 진행경과를 알리도록 공시 규정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게 일부 투자자들의 의견이다. 이차전지 사업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한 기업은 사업보고서에 “제품 개발 진척도를 공개할 경우 당사 경쟁력에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회사 사업의 진정성 검증은 주주 몫이 됐고, 검증 방법은 없다. 글로벌 업계 1위 CATL이 매년 행사를 통해 자사 배터리의 개발 진척도와 신제품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는 반대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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