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자유몸’
최근 수천억 기부에 사면용 지적도
경영 복귀 이후 승계작업 착수 기대
차기 후계자 부재·증여세 부담 숙제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실적 악화 속 고배당 논란과 최근 통 큰 기부 행보가 사면용이 아니냐는 등의 잡음이 있었지만 ‘경제살리기’라는 정부의 특명 아래 자유의 몸이 됐다. 83세 고령에도 그룹 내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한 만큼 경영 일선에 복귀함은 물론 승계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부·배당 잡음 속 광복절 특별사면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전날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번 특별사면은 ‘경제살리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회장을 포함한 기업인 12명이 이번 특사에 포함됐다. 기업 운영 관련 범죄로 집행유예가 확정되거나 고령 또는 피해 회복 등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번 특사대상이 됐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 사진=연합뉴스

다만 사면을 받기까지 잡음이 적지 않았다. 이 회장이 최근 2~3개월 간 수천억원대 현금을 기부해 화제가 됐는데 공교롭게도 특별사면 직전에 이뤄지면서다. 이 회장은 지난 6월부터 고향인 전남 순천 운평리 마을 주민과 모교 초중고교 동창생, 군대 동기·전우 등에게 현금 5000만~1억원을 전달했다. 그동안 순천 지역에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지만 격려금 전달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1300여명에게 현금 1600억원을 전달했고 선물세트·역사책 등 물품까지 합치면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기부한 금액은 2600억원에 달한다. 이후 이 회장이 광복절 특사명단에 오르면서 사면을 염두에 두고 기부 릴레이를 펼친 게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배당금 잔치’ 논란도 있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이 회장이 부영에서 수령한 배당금은 3062억원에 달한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받은 배당금(122억원)의 약 26배 수준이다. 이 회장은 부영 지분 93.79%(1313만1020주)를 보유해 사실상 배당액 대부분을 가져가고 있다. 배당금만 놓고 보면 국내에 내로라하는 최상위 재벌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작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3000억원이 넘는 배당금으로 1위를 차지했고 이 회장(1260억원)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1106억원)이 뒤를 이었다.

고배당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기업 실적이 악화한 상황에서 높은 배당금을 받는 게 맞냐는 지적이 일었다. 부영그룹의 핵심 주력 회사인 부영주택은 매출액이 작년 대비 67% 쪼그라들면서 영업이익이 486억원에서 영업손실 1615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당기순손실은 387억원에서 1148억원으로 불어났다. 지주사인 부영도 매출이 지난해 6623억원으로 지난해(1조7440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그룹 지배력 여전히 공고···경영 복귀 가능성 커져

이 회장은 이번 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이 회장은 수백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2020년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아 복역하다 이듬해 광복절에 가석방 됐다. 형기 만료 후에도 특별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 따라 5년간 취업 제한으로 경영에 복귀하지 못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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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부영그룹이 추진 중인 사업들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부영그룹은 서울 금천구 대형종합병원 건립과 ▲인천 송도테마파크 ▲성수동 특별계획구역 호텔·주상복합 ▲제주도 중문 호텔 건립 등 굵직한 랜드마크급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이 회장의 부재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부영그룹은 그동안 이 회장 1인 중심 경영 체제를 유지해 왔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 부영의 지분 93.79%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영은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을 100% 자회사로 뒀다. 부영그룹의 24개 계열사 중 부영엔터테인먼트 1곳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에 이 회장의 직·간접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이 회장은 10만원 단위 지출까지 본인이 직접 관리해 모든 경영 현안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승계 작업 시급하지만 뚜렷한 후보 없어···막대한 세금도 숙제

경영 복귀와 동시에 승계 작업에 착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이 회장 부영 지분이 100%에 달한다는 점과 83세 고령인 것을 감안할 때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시급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장은 슬하에 3남(이성훈·이성욱·이성한) 1녀(이서정)를 두고 있다.

다만 차기 후계자가 누가 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장남 이성훈 부영주택 부사장은 부영 지분율이 2.18%에 불과하다. 2014년 부영 사내이사직에서 사퇴한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성욱 부영 전무와 이성한 부영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도 경영상의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 경영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창립대회’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왼쪽)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나마 막내딸인 이서정 부영주택 전무의 활동이 눈에 띈다. 이 전무는 2021년 지주사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또 계열사인 동광주택산업, 동광주택, 오투리조트 등 10곳 이상의 부영그룹 계열사에서 사내이사를 맡아 경영에 참여 중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한때 차기 후계자 후보로도 꼽혔지만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진 않고 있다.

승계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도 풀어야 할 숙제다. 업계에선 이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 주식을 통한 경영권 승계나 증여 시 천문학인 증여세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최근 2년간 3000억원이 넘는 배당을 받은 배경이 증여세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독점적 경영 체제가 장기간 유지돼 오면서 세금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며 “세금에 대비한 자금 마련과 함께 승계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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