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잡는 경찰조차 ‘정당방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
칼 든 괴한 테이저건 맞고 넘어지며 자기 칼에 찔려 사망···당시 법원은 “국가가 유족에 배상해야” 판결도
향후 정당방위 적극 인정 가능토록 법적 토대 바뀌게 될지 관심

호신용 삼단봉. / 사진=연합뉴스
호신용 삼단봉.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최근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기난동 및 살인예고가 판을 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삼단봉, 전기충격기 등 호신용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모든 순간 옆에 경찰이 있을 수 없으니 내 몸은 스스로 지키자는 분위기가 확산된 듯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삼단봉이 날 지켜줄지 걱정을 하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은 법이 날 지켜 줄지 여부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정당방위’가 잘 인정되지 않았던 그간 사례들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반인도 아니고 범죄자를 잡는 경찰들조차 정당방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최근 ‘묻지마 흉기 난동’ 분위기 속에 한 경찰관이 익명게시판에 ‘범죄자 인권 지키려 경찰 죽어 나간다’며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습니다. 범죄자를 진압하려다 되레 거액소송이나 당하는 현실을 개탄한 겁니다. 해당 글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고 ‘오죽하면 저러겠느냐’란 반응입니다.

◆ 해외에선 실탄사용 상황도 “칼 내려놓으세요” 해야 하는 한국 경찰

한 방송에서 경기도 한 파출소에 주취자가 흉기를 들고 들어와 경찰들을 위협하다 테이저건으로 진압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영상엔 그 상황에서도 경찰들은 친절하게 “칼 내려 놓으세요”를 외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만약 미국 등 타국경찰서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실탄을 맞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찰이 테이저건으로 진압했다가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사례도 허다하다고 합니다.지난 2011년 인천시 부평구 골목길에서 술에 행인에게 난동을 부리고 자해를 하려던 취객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철마지구대 소속 A경장이 쏜 테이저건의 충격을 받고 쓰러지면서 자신이 들고 있던 흉기에 왼쪽 옆구리를 찔려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천지법 민사11부(송경근 부장판사)는 경찰이 무리하게 테이저건을 사용했다며 국가가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경찰이 이럴 정도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편의점주가 흉기를 든 괴한에 찔린 후 발차기로 제압했다가 폭행죄 상해 피의자가 된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키려고 집에 들어온 도둑을 빨래건조대로 때렸다가 도둑이 사망했는데 상해치사 혐의로 형을 받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등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느냐는 것인데요. 앞으로 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와도 냉철한 심리를 유지하고 딱 상대방만큼만 계산해가며 물리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치고 박고 싸우지 않고 적당히 힘을 써가며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상대보다 월등히 완력이 있어야 가능한데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형법상 정당방위 조건 인정받기 어려워

근본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받기가 어렵게 해 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형법상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위해선 ▲지금 침해가 발생해야 하고 ▲자기 및 타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침해정도가 상당해야 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절체절명 상황에서도 이렇게 냉철하게 따져가고 감정 및 힘조절해가며 자기방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또 저 자체도 모호해서 위 판례 사례들처럼 현장에서의 격렬한 상황 속에 상대방이 상해를 입거나 했을 경우 되레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흉악법을 진압해야 하는 경찰은 물론, 일반인들도 정당방위의 범위를 넓게,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경찰 및 일반 시민의 정당방위, 정당행위 등 위법성 조각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해 적용할 것을 대검찰청에 주문했습니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쉽게 말해 어떤 행위가 불법적 행위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사유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위법행위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본인을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위법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윤희근 경찰청장도 보다 못해 흉악범죄에 총기사용 등을 적극 동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예전부터 지적이 나왔던 부분이고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때보다 뜨거운 만큼 이번엔 변화가 있을지 주목됩니다. 무엇보다 일선에서 느끼지 못한다면 모두 공염불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큽니다. ‘범죄자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 이제 그만 나오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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