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 전수조사 착수
부실 발견 시 계약해지·손해배상 요구 이어질 듯
하자 없어도 각종 비용 부담···건설사 불만 토로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진 전국 민간 아파트에 대해 전수조사에 착수하면서 건설업계가 좌불안석이다. 철근 누락 등 부실시공으로 판명날 경우 계약 해지는 물론 손해배상 요구가 쏟아질 수 있어서다. 여기에 안전진단과 보수·보강 등의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단 점도 건설사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1일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 계획 점검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했다. 조사 대상은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가운데 현재 시공 중인 현장 105개와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개로 총 293개 단지다. 국토부는 다음 달 말까지 조사를 완료한 뒤 10월 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지붕을 바로 얹는 방식이다. 건설 비용·시간이 적게 들지만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압력이 몰려 완충 역할을 하는 전단층을 넣고 이를 보강하기 위한 철근을 시공해야 한다. 국토부는 도면 확인 후 육안으로 시공 상태를 살피고 콘크리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비파괴 검사 장비를 동원해 철근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하루 전인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시설안전협회에서 열린 무량판 민간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시설안전협회에서 열린 무량판 민간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발주한 인천 검단 아파트는 무량판 구조로 철근이 다수 누락돼 붕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LH가 자체적으로 발주한 단지에서 철근 누락 사례가 잇따라 발견되며 파장이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입주민들의 부실시공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공공뿐 아니라 민간 아파트도 점검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면서 건설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조사 결과 부실시공으로 판명날 경우 입주예정자와 입주민 등 이해관계자들의 손해배상 요구가 이어질 수 있어서다. 앞서 정부는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LH 아파트에 대해 입주민이 원할 경우 무조건 계약 해제를 수용하고 법원에서 중대 하자로 인정되면 그에 맞는 손해배상도 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도 LH에 준하는 보상 방안을 강구한단 방침이다.

정부는 부실시공이 발생한 공공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 계약해지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임대아파트 입주예정자에겐 입주 여부와 상관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위약금은 면제해 준다는 방침이다. 이미 보증금을 낸 경우 이자를 포함해 돌려주고 이사비도 지원한다. 이주를 원하면 다른 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하는 방안도 살피기로 했다. 공공분양 아파트 입주자에게도 입주 전이라면 계약해지권을 준다. 이미 입주한 거주자들은 법원 판단에 준하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건설사들은 부실이 드러날 경우 발생하는 손해배상 규모와 현재 짓고 있는 아파트의 계약 해지 요구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아파트에 하자 등이 존재하는 경우 아파트 소유자는 시행사나 시공사에 하자 보수를 요구할 수 있고 하자 보수를 원치 않는 경우 하자 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이때 손해배상금은 법원 감정평가를 통해 정해진다.

지난 4월 지하주차장 붕괴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전경. / 사진=연합뉴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철근이 빠졌더라도 이미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현실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만큼 입주민 입장에서 금전적인 보상을 원할 것”이라며 “이번에 조사 대상인 준공 단지가 약 15만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해배상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계약해지는 물론 아파트 하자 소송 등이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를 위한 안전진단 등 각종 비용을 건설사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정부는 시공 중인 단지의 경우 공사비에서 점검 비용을 충당하고 준공 단지는 시공사가 해당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단 방침이다. 여기에 점검 결과 문제가 있을 경우 시공사가 비용을 부담해 올해 말까지 보수·보강을 완료하도록 할 계획이다. 향후 책임소재가 밝혀지면 구상권을 청구하게 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계 신뢰성 회복이란 이유로 정부가 각종 비용을 건설사에 부담시키고 있다”며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자가 발생한 것도 아닌 데 안전진단 비용과 보수·보강, 손해배상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불안감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점검 결과 문제가 없다면 사실상 비용만 들이고 보상받을 길이 없어 건설사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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