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증가폭 역대 최대···주담대 급증 원인
대출 규제 완화·집값 바닥론에 수요 몰려
금리·연체율 상승 맞물려 부실 우려 커져
상반기 국세 전년比 40조 감소···“세제 완화 부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이 속도 조절론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늘고 있는 데다 세수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남은 규제 완화책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나 부동산 규제지역 개편 등이 시간을 두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3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6조원 늘어난 1068조1430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가폭은 2021년 9월(당시 6조4000억원 증가)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최대치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월 한 달간 6조원 증가했다. 전월 7조원 늘었던 것에 비하면 증가 폭 자체는 축소됐지만 여전히 큰 폭의 증가세다.

주담대 규모가 급증한 배경엔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가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올해 초 규제지역을 대부분 해제하고 다주택자와 임대·매매사업자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다. 이어 연소득 상관없이 최대 5억원까지 빌려주는 ‘특례보금자리론’도 도입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현재 심사를 통과한 대출만 30조원을 넘어서며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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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부턴 ‘역전세난’(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하락)을 해소를 위해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 규제까지 풀었다. 전세금 반환이 어려워진 집주인에 대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가계부채 증가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 완화와 ‘집값 바닥론’이 확산되면서 대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며 “특례보금자리론에 이어 전세 보증금 반환대출까지 완화되면 가계대출이 둔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출금리가 다시 반등하면서 이자 부담과 부실 위험이 커지는 실정이다. 5대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지난 4일 기준 연 4.08~6.937%로 하단이 4%대로 올라섰고 상단은 7%에 근접했다. 가계대출 연체율도 오름세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연체율은 3월 말 0.25%에서 6월 말 0.27%로 상승했다. 가계대출 증가세에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다.

시장에선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남은 규제 개선안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와 규제지역을 1~2단계로 나누는 규제지역 개편 등이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건 수요자들이 이자 부담을 감수하고 돈을 더 많이 빌리고 있다는 의미다“며 ”이 같은 배경엔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는 만큼 정부도 추가 완화 카드를 꺼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수 부족 우려도 속도 조절론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세수 결손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 중이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국세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9조7000억원이 덜 걷혔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도 작년보다 2조원 이상 덜 걷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공시지가 하락 폭이 예상보다 컸던 데다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 계획(60→80%)도 실행하지 않아서다. 세수 감소를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정부도 이러한 우려를 인식한 듯 지난달 27일 발표된 세제개정안에 부동산 세제 관련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지난해 대대적인 제도 개편을 통해 부동산세 전반에 대한 부담 완화가 이미 이뤄진 만큼 당장 추가적인 개편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정부는 국정 과제와 경제정책 방향 등을 통해 다주택자 중과 등에 대한 세제의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지속 강조했다”며 “다만 현시점에서 부동산 세제를 큰 틀에서 바꿀 필요성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규제 완화안을 내놓는 대신 금융시장 안정화에 집중할 것으로 봤다. 서진형 공정주택 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내년 5월까지 한시 유예된 만큼 내년 법 개정을 진행해도 되는 데다 세수 부족 상황에서 야당의 반대도 예상되는 만큼 한 템포 쉬어가는 모양새다”며 “은행권 부실 우려가 줄어들 때까지 추가 규제 완화 방안은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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