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대형 시중은행 여성 CEO 배출은 못해
임기 중 '여성 리더' 강조···ESG 경영 토대 놓아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9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용퇴’를 결정했다. 차기 회장 선정 레이스에도 참여하지 않고 퇴임을 밝힌 것이다. 금융권에선 ‘아름다운 퇴장’이란 찬사가 쏟아진다. 

그는 업계에서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모든 걸 다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회장은 임기 중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KB금융이 리딩금융그룹으로 올라 설 토대를 마련했다.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은행, 증권, 생명보험, 손해보험, 카드 등 금융업 전 부문에서 대형사를 갖춘 곳은 KB금융이 유일하다. 더구나 그는 ‘KB사태’로 불리는 내분을 수습하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윤 회장도 한 가지 아쉬울 만한 대목이 있다. 대형 시중은행 최초로 ‘여성 은행장’을 배출하지 못한 점이다. 국내 은행권에서 ‘최초’ 기록을 쓴 여성 은행장은 이미 있다. 지난 2013년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국내 최초로 여성 은행장이 됐고,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가운데서는 아직 여성 수장은 나오지 않았다.   

윤 회장은 임기 중 ESG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의 일환으로서 여성 리더의 활약을 강조했다. 현재 금융지주 가운데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이 40%를 넘는 곳도 KB 밖에 없다. 여성 사외이사 비율 40%는 유럽연합(EU)이 오는 2026년 6월부터 의무화한 것이다. 여성 국민은행장까지 선임했다면 국내 은행권 ESG 경영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됐을지도 모른다. 

특히 윤 회장은 임기 중 박정림 KB증권 대표를 중용했다. 박 대표가 지난 2018년 KB증권 수장으로 임명된 당시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박 대표는 은행에서 일할 당시에도 능력으로는 이미 보여줄 만큼 보여준 인재였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금융권 문화에서 박 대표가 그룹 내 핵심 비은행 계열사 수장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윤 회장의 결단이 컸다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더구나 지난 2020년 10월 KB국민은행장 인사 당시에 금융권에선 박 대표가 차기 행장 유력 후보란 관측이 다수 나왔다. 윤 회장이 ESG 경영을 강조하는 만큼 대형 시중은행 최초 여성 은행장 타이틀을 KB가 가져갈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결국 은행장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에도 윤 회장은 박 대표를 지주 총괄부문장에 임명해 KB증권 대표와 겸직하게 하는 등 꾸준히 기회를 줬다. 총괄부문장은 KB금융지주 내에서 부회장에 버금가는 위치다. 

윤 회장이 차기 행장 인사에 관여할 가능성은 낮다. 차기 국민은행장은 올해 12월 선임되고 윤 회장은 11월 20일까지 임기라 일정만 보면 윤 회장이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대 계열사인 국민은행의 다음 수장을 뽑는 작업은 차기 지주 회장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용퇴를 선언한 만큼 그룹 계열사 인사 중 핵심인 은행장 선임은 후임 회장에게 전적으로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윤 회장은 물러나지만 여성 은행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여전히 KB다. 그가 공들여 육성한 여성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KB가 검증 받은 여성 리더를 국내 최초로 은행장에 선임한다면 ESG 경영의 기반을 닦은 윤 회장의 업적을 다시 조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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