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 연이은 '임상 중단' 발표
자금 조달 불확실성에 선택과 집중 전략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금 여력이 마땅치 않은 바이오텍들이 ‘임상 중단’이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재정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진 기업이 늘어나면서 임상에 들어간 투자금보다 앞으로 쏟아부어야 할 비용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임상 중단 소식은 올해 들어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상업화 가치가 낮고,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정리해 연구개발(R&D) 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전임상과 1~2상까진 내부 자금을 활용해 끌고 갈 수 있었으나, 후기 임상을 끌고 갈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지놈앤컴퍼니는 면역항암제로 개발 중인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후보물질 ‘GEN-001’의 임상 일부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메드팩토는 지난해 5월 항암제로 개발해 온 백토서팁의 임상 일부를 중단했다.

지난달엔 임상 중단 소식이 더욱 빈번하게 들려왔다. 네오이뮨텍은 지난 7월 무려 3건의 임상을 중단했다. 교모세포종 치료제 ‘NIT-104’, 피부암 치료제 ‘NIT-106’, 위암 치료제 ‘NIT-109’가 해당된다. 지씨셀은 판상형 건선 환자 대상 동종편도유래중간엽줄기세포 치료제 후보물질 ‘CT303’의 임상 1상을 조기 종료했다. 고바이오랩은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후보물질 ‘KBLP-007’의 호주와 국내 2a상 시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상 중단에 대한 명분으로 ‘선택과 집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임상 환자 모집이 어렵고, 자금 출혈이 큰 파이프라인을 정리해 핵심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상 2상은 물론이고, 최소 수천억의 비용이 들어가는 3상 단계에서 임상을 멈추기도 했다. 임상 중단에 따른 손실은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개발 중이던 혈액암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3상을 중단했다. 6조원 넘게 투자해 도입한 지 불과 약 3년 만이다. 임상 데이터 분석 결과, 효능에 이득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스위스 제약사 ADC 테라퓨틱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기반 혈액암 치료제의 1차 치료제 승인을 위해 추가로 진행한 임상시험을 중도 포기했다. 다국적제약기업 노바티스는 비만 신약후보물질의 임상 2상 결과 분석 이후 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다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임상 중단 선언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재정 위기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임상 중단은 연구 효율을 끌어 올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잔가지를 정리하고 똘똘한 파이프라인에 올인하는 것은 바이오 돈맥경화 속, 생존 전략이 될지도 모른다.

통상 임상 중단은 기업의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음에도 주주들과 투자자들에게 개발 중단을 공시하고, 그에 따른 손익을 따져 핵심 파이프라인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는 박수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들에게 임상 중단이 새로운 도전으로 비춰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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