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경쟁에 스파이 대책 필요성 증대
솜방망이 처벌에 범죄 경각심 간과 분위기
‘부처협업·처벌강화’ 정부·국회 대응책 모색 
“기술자 대접 강화, 윤리의식 강화도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유출 시도가 계속되면서 정부와 국회가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관계부처 협업을 강화하고 관계법령 정비에 나선 가운데 국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대책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대기업과 대등한 기술 수준을 지닌 하청 기업의 경우 정부가 보안 시스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산업 현장에서 기술 유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올 1~6월 산업기술 유출은 11건으로 지난해 유출건수 20건에 비해 비율상 높고, 유출 방식 또한 단순한 기술 정보 빼내기에서 기업 인수합병, 인력 고용 등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달 중순엔 반도체 핵심 기술을 국외 경쟁사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가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란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그 외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했얼 땐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형에 각각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기술유출을 하더라도 무죄나 집행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1심 공판 사건 33건 중 무죄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87.8%로 파악한다. 벌금형과 징역형은 각각 2건에 그쳤다. 처벌 수준이 낮아 산업기술 유출 범죄의 엄중함을 못 느끼고 쉽게 기술스파이에 나선단 지적이 제기된다. 

기술스파이 처벌 강화 필요성엔 정부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유출해도 사실상 무죄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기술유출 문제가 줄어들지 않는단 지적에 주목하고 있고 대응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관련부처간 협업을 통해 국가 전략기술 유출을 효과적으로 막을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날 산업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허청, 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산업기술보호 정책협의회를 열고 연내 산업기술보호법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부처간 협력을 통해 산업기술을 꼼꼼하게 보호하기로 했다. 

김완기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산업기술보호법은 지난 2019년도 개정 했는데 이후 기술 보호 환경이 급변함에도 재개정없이 이어져왔다”며 “새로운 환경 변화, 우리 기술의 세계적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제도 개선이 필요해 이번에 15개조 57개항을 개선하는 전문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안에 대해선 “사모 펀드 및 간접 인수, M&A 지위, 외국인 범위 확대, 행정 권고 및 등록제 도입 등 그간 제도 미비점으로 지적된 사항들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표=정승아 디자이너
/표=정승아 디자이너

 

정부가 대응 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산업기술 유출 방지 법안 발의가 줄잇고 있다. 이달에만 여야를 막론하고 총 4건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제출됐고, 지난 5월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10건에 달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정부의 국가 핵심기술 보유기관 관리 강화, 산업기술 침해로 만들어진 물건의 압류 등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관석 무소속 의원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처벌 대상을 강화해 단순히 산업기술을 유출, 사용, 공개하는 행위만으로 처벌을 가능토록 하는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산업기술 유출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을 강화하는 법안을,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기술스파이의 이직 알선 금지를 담은 법안을, 같은당 김성원 의원은 스타트업 기술 유출의 경우 가중처벌하는 법안을 각각 제출했다.

산업 기술 유출을 두고 여야 모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인식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산업기술유출 관련 일부 법안은 이달 중순 상정됐으나 아직 구체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며 “여야간 크게 이견이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전반적인 논의에 장애가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기술 유출 문제에 있어 기술자의 처우개선과 윤리의식 함양을 병행하고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보안기술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을 내놓는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안학과 교수는 “기술자들이 국내에 비해 해외에서 제안하는 혜택이 윤리를 어길 수 있을만큼 파격적인데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자에 대한 대접이 나아져야 하고 한편으론 국가관, 사명감, 직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거나 본인이 기회를 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요한 기술 정보가 담긴 데이터, 저장 시스템에 접근할 때 보통 물리적 보안 기법을 사용해야 함에도 방치하다가 놓치는 경우가 많단 지적도 제기된다. 승인받지 않은 유출 같은 경우 미리 기술적으로 막는 기술적 관리제도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큰 기업의 경우 데이터 보안은 대체적으로 잘 돼 있으나 큰 기업 하청을 받는 협력기업들은 기술은 같은 수준이지만 시스템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국가가 전략적 기술이라고 평가한 것은 보유 기업에 대해 외부유출에 대한 보완 조치들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7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산업기술보호 정책협의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27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산업기술보호 정책협의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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