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행안부장관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
“참사, 총체적 원인으로 발생···하나의 원인 아냐”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 위반” 소수의견도
이상민 업무 복귀···“정쟁 멈추고 힘 모아야” 입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월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월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문제로 탄핵심판대에 오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파면을 면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장관의 사후 발언이 부적절했다면서도 탄핵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번 참사가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유가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이 장관에게 돌리기 어렵다고 봤다.

25일 헌재는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이 장관 탄핵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참사의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 부분으로 나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관 전원은 이 장관의 참사 ‘사전 예방조치’에서 헌법 및 재난안전법, 재난안전통신망법, 국가공무원법 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재난안전법에 따라 국무총리는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작성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의 집행계획을 작성해야 하는데, 이 계획의 수립은 피청구인이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미 작성된 것”이라며 “피청구인이 이 계획을 수정·변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난안전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 발생한 다중밀집사고는 (주최자가 있는 행사와 달리) 재난안전법 명시한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별도의 구체적인 예방 및 대비 조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문제될 수 있다”면서도 “인파 밀집을 예상한 언론보도가 다중밀집사고 자체를 예상하거나 우려했다고 보기 어려운 사정, 핼러윈데이 전후의 다중밀집사고의 위험성, 신고 전화의 내용에 대해 별도 보고가 없었던 사정 등을 종합할 때 피청구인에게 사건 참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중앙재난 안전대책본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미리 취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참사 발생 당시 재난안전통신망 사용이 미흡했지만, 이는 재난안전통신설비의 신규 도입·교체가 단계적으로 이뤄져 종전의 무선통신망을 활용하는 지령장치가 모두 교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피청구인의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운영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을 설치·운영하지 않은 ‘사후 재난대응’에 대해서도 헌재는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 헌법을 위반하거 위배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의 필요성과 시기에 대한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한 때에는 재난안전법에 위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피청구인은 참사 당일 밤 11시20분쯤 참사 발생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고 이 메시지만으로 피해 상황과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고 재난대응 방안을 결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봤다.

또 “이튿날 새벽 1시5분경 현장지휘소에 도착해 소방재난본부장으로부터 현장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당시에는 긴급구조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재난 원인과 유형, 피해 상황 및 규모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아, 피청구인이 다른 대응 조치에 우선하여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중대본과 중수본이 수행하는 역할 내지 기능이 일정 부분은 실질적으로 수행됐다. 중대본과 중수본의 설치·운영에 관한 피청구인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 하여 사회적 타당성을 잃은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참사 현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관계기관의 보고를 받고 지시 및 협력 요청을 계속하였던 이상, 피청구인의 재난 대응 방식이 정부의 정책과 행정에 대한 공적 신뢰를 현저히 해할 정도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했다거나 유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참사 다음 날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이 사건 참사 중대본은 사망자 장례비 및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구호금, 정부합동분향소 설치 등 조치를 발표했다”며 “11월30일 행정안전부에서 ‘유가족 협의회’ 등 지원을 위한 ‘행안부 지원단’ 설치를 발표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청구인의 사후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으로 평가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수 의견은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 골든타임이 지난 시간이었다’라는 이 장관의 사고 이후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했다.

그가 충분한 주의를 다해 발언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전체적으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들의 의도가 참사의 원인이나 경과를 왜곡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발언으로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에 관한 국민의 신뢰가 현저히 실추됐다거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특히 다수 의견은 “이 사건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하고 확대된 것이 아니라 종래 재난안전법령상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 및 매뉴얼의 명확한 근거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고, 각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했으며, 재난상황에서의 행동요령 등에 관한 충분한 홍보나 교육, 안내가 부족했던 점이 총제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면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에게 돌리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 사진=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헌법재판관들이 배석해 있다. / 사진= 연합뉴스

◇소수 의견 “이상민 사후 발언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이 장관의 발언은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별개 의견도 있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피청구인은 참사의 경위나 원인 등이 밝혀지지 않은 재난수습초기 단계에서 기초적 사실관계에 관한 확인이나 객관적 분석에 근거하지 않고, 국민들이 참사 발생의 원인을 오인하게 하거나, 피해 발생 및 확대에 관한 경찰이나 소방공무원의 의무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을 했다”며 “이는 재난 및 안전관리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품위손상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골든타임 발언에 대해서도 “참사의 주요 경위와 관련된 객관적 근거가 없는 사실을 정부의 공식적 입장으로 오인될 수 있도록 발언하였고, 여기에 피청구인의 책임 회피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 재판관은 이 장관이 현장지휘소에 늦게 도착한 것과 관련 “피청구인은 이 사건 참사 발생을 인지한 때로부터 현장 인근, 현장지휘소 도착까지 약 85분에서 105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최소한의 원론적 지휘에 허비하여 행정안전부는 물론 국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손상시켰다"며 "이로써 국가공무원법 제56조가 규정한 공무원의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은 “피청구인의 사후 대응과 일부 발언이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이기는 하나, 피청구인의 법률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의 정도가 중대하여 피청구인에게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박탈하여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정미 재판관도 이 장관의 일부 사후 발언에 대해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정 재판관은 “행정안전부장관이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하는 언행은 국민들의 생각과 사회 분위기에 보통의 공무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반향을 일으킨다”며 “피청구인이 한 발언은 책임을 회피하는 데 연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언행이었고, 이는 참사의 피해자와 유족들뿐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고 믿고 기대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품위유지의무 위반만으로는 그 법 위반행위가 중대하여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의견을 냈다.

◇ 이상민 즉시 업무 복귀···대통령실 “탄핵 남용” 비판, 여야 공방 이어져

이 장관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 결정이 나자, 충남 청양군의 수해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즉시 업무에 복귀했다. 직무 정지 167일 만의 복귀다. 이 장관은 이날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다시는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입장문을 통해 “거야(巨野)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도 다수 야당이 참사를 정쟁화했다며 비판했다. 야당은 이번 결정이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안 마련을 요구했다.

헌재 결정 이후 유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다”, “대한민국이 무정부 상태임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보수 유튜버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태원은 북한소행”이라고 소리치자 분노한 유가족들이 뛰어들며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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