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 노선변경 윗선 압력 의혹 제기
백지화 등 잇단 이슈 제기에 관심 전환
문제 본질 잃은 채 사회적 소모만 남겨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프랑스의 대표적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30여년 전 지구촌에 실시간 생중계된 이라크전쟁을 두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뚱딴지같은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속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언론에 비쳐진 전쟁 이미지는 실제 전쟁의 참혹함과는 다르다는 점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 걸프전 당시 전쟁 현장에 있었던 주민, 군인들을 제외한 전 세계인들은 ‘전쟁 중계영상’을 보며 이라크 전쟁을 상상하고 각인했다. 

보드리야르의 말은 미디어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였지만, 우리 삶에도 적용 가능하다. 이미지가 실제를 가려버리는 사회적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휘발성 강한 이슈들이 사안의 본질을 덮고 있다. 

당초 이 고속도로는 양평 지역의 숙원 사업으로 2008년부터 추진 움직임이 있었지만 사업성 문제로 묶여있다 2017년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되면서 본격 시동을 걸었다. 이후 2021년 깐깐한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고,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가 사업타당성 조사에 착수, 지난해 7월부턴 관계기관과 구체적 노선을 논의하며 예타 통과 노선 외 대안 노선이 새로 제시됐다.

그런데 대안 노선 인근에 공교롭게도 김건희 여사 일가 토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야당을 중심으로 윗선의 압력이 있었던 게 아니냔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당초, 정부는 제기된 의혹 해명에 집중하는 듯했으나,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돌연 사업 백지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관심사는 당초 의혹에서 사업 중단으로 바뀌었고 서울-양평고속도로는 정치권에 더해 해당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까지 어우러진 갈등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후 논쟁은 이미지가 이미지를 덮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원희룡 장관이 유튜브 방송을 하더니 국토부는 고속도로 관련 자료를 공개했고, 이젠 사업 백지화 발표가 충격요법이라며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다보니 당초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최근 기자가 참석한 여당 의원 주최 서울-양평고속도로 토론회에선 국토부 관계자가 예타안을 대신할 대안 노선을 선정하게 된 이유를 교통량, 환경, 주민동의 등 다방면으로 설명했다. 사업타당성 조사 시작 후 종점이 바뀐 대안이 나온 시기가 다소 빨라 미심쩍긴 했지만, 국토부 설명을 들어보면 대안이 바뀐 취지는 어느정도 납득이 갔다. 

정부가 대안의 적절성과 대안 도출이 빠르게 이뤄지게 된 과정에 집중해 대국민 설명이 이뤄졌다면, 국가적 사업이 한 달도 안 돼 백지화와 재개 가능성이 오가는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서울-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방침은 머지않은 시일 내에 철회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원래 제기됐던 의혹 또한 명확하게 해소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 논란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더욱 허무하게 느껴진다. 

포장된 이미지들이 뒤범벅돼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조차 잃어버린 채 사회적 소모만 남긴 이 상황을 보드리야르가 봤다면 뭐라 얘기했을지 궁금하다. 아마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은 없었다”고 외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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