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시행령 근거 200억 지장물 철거 사업권 요구
GH “안전사고·중대재해 우려···전문업체에 맡길 것”
갈등 장기화로 사업 지연 불가피···“다른 지역서 비슷한 상황 발생할 수도”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하남시 교산동 일대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3기 신도시 하남교산지구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원주민들이 생계를 이유로 지장물 철거공사 사업권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사업시행자인 경기주택도시공사(GH)는 비전문가에 맡기기엔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사업은 수개월째 답보 상태다. 비슷한 갈등이 다른 공공택지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하남교산지구 거주자 380여명 중 190여명이 속한 주민생계조합은 GH에 지장물 철거공사 사업권을 이양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장물은 공공사업 시행 지구에 속한 토지에 설치되거나 재배되고 있어 공공사업 시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 시설물, 창고, 농작물, 수목 등을 말한다. 하남교산지구는 지장물 철거공사 규모가 200억원(1-1구역 120억원·1-2구역 80억원)으로 추산된다.

조합은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령을 근거로 지장물 철거공사를 직접 하겠다는 입장이다. 시행령은 지난해 7월 공공주택사업으로 생활 기반이 상실된 원주민의 재정착을 위해 대통령령으로 신설된 규정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공공주택사업자는 면적이 50만㎡ 이상이면 원주민으로 구성된 법인이나 단체에 지장물 철거나 분묘 이장, 건물관리 등 소득 창출 사업을 위탁해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GH는 철거공사 특성상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데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다. 하남교산지구는 학교·도로·공동주택과 지구 경계가 맞닿아 있고 밀집도가 높아 안전사고나 중대재해가 우려되는 사업장으로 분류된다. 최근 발주청에 시공단계 안전관리 의무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경력이 없는 조합에 공사를 맡기긴 어렵다는 게 GH의 입장이다. 앞서 GH는 지난 1월 지장물 철거공사 입찰공고를 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한 달 만에 공고를 취소하기도 했다.

조합 측은 사업비 규모가 큰 지장물 철거가 제외되면 원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지원한다는 시행령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경기 수원시 GH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연데 이어 이달 들어 김세용 GH 사장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GH가 지장물 철거 대신 15억원 규모 건축물 위탁관리 사업을 제안했지만 주민들은 기약 없는 준공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반발했다. 조합 관계자는 “조합이 철거 사업을 맡고 철거업체와 계약을 맺어 원주민들이 철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게 원주민 생계 대책이고 시행령의 취지다”고 말했다.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하남교산지구는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비슷한 갈등이 다른 사업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경기도 내 조성 중인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59곳이다. 이 중 공공주택 특별법 지원을 받는 면적 50만㎡ 이상 사업지는 44곳에 달한다.

업계에선 혼선을 줄이기 위해 세부 시행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시행령에 명시된 지원 대책의 시행은 지방자치단체 또는 사업시행자의 재량으로 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행령에 비용 부담이나 책임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데다 주민 단체에 위탁 가능한 사업 범위를 놓고 주민들과 사업시행자 간 이견이 있어 제도 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하남교산뿐 아니라 다른 사업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갈등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세부 시행지침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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