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탐 위험성엔 필요 이상 수준의 공포감 갖고 예상되는 ‘확실한 위험’이었던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대비 못하는 사회
유난스러울 일엔 안일하고 냉정해야 할 사안엔 호들갑 떠는 사회 분위기 바뀌어야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얼마 전 주말 사이 잠실 롯데월드몰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지하철역부터 인파가 마치 파도처럼 롯데월드몰 건물로 밀려들어왔고 왠만한 식당은 사람이 차서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짧게 있다가 빠져나와 여유롭게 다른 곳에서 식사를 했다. 지인과 주말엔 절대 오지 말자는 다짐을 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약 8~9년전 롯데월드몰이 개장했을 당시엔 인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서울시 주차정책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안전 관련 우려가 한몫 했다. 롯데월드타워 건설 당시 잠실 주변에서 싱크홀이 많이 생겼는데, 이게 롯데월드몰 공사와 관련이 있네 없네 하며 시끄러웠었다. 롯데그룹에서 해당 건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데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난다. 개장 및 재개장한 후에도 붕괴 등 안전문제로 방문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보다 확실히 덜 붐볐던 기억이 난다.

당시 롯데월드몰 붕괴 우려 뉴스를 매일 접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상황을 놓고 보면 싱크홀 때문에 롯데월드몰이 무너질 것이란 이야기는 ‘과학’보단 ‘괴담’이다. 실제로 싱크홀과 롯데월드몰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 괴담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이번 주말도 아마 롯데월드몰은 주차할 공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대한민국에선 무한 반복돼 온 느낌이다. 당시 롯데월드몰 싱크홀 기사를 접하던 우리는 이번엔 ‘아스파탐’ 뉴스를 보며 술렁인다. 아스파탐이 암을 유발한다고 한다.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하도 뉴스에 많이 등장해서 보니,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에 아스파탐을 추가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자세히 알기 전엔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너무도 유명한 ‘석면’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 줄 알았다. 그간 마셔왔던 ‘제로콜라’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허탈했다. 이미 기존에 우리가 섭취하고 있는 많은 식품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분류된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관련 내용을 계속 찾아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증거나 객관적 사실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식품업체는 아스파탐 배제를 검토하겠다고 난리다. 나름 ‘선제적 대응’이라고 자평할지 모르겠지만 굳이 저래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실 그리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소비자들 행동양식에 맞춤형으로 대응한 것일 수 있으니 별 할말이 없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확실히 확인되지 않은, 혹은 과학적 분석과 맞지 않은 것에 대해선 쉽게 흥분하고 우왕좌왕 하면서, 오히려 어느정도 예측 가능하고 확실한 위험에 대해선 안일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최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 지하차도에서 차량이 침수돼 14명이 사망하는 가슴 아픈 참사가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급격한 기상변화로 인한 사건사고를 하나하나 전부 인재로 삼는 건 무리가 있다.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자연재해로 인한 사상자가 ‘0명’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청주 오송 지하차도 사고는 정부나 지자체 잘잘못을 따져봐야 할 가치가 있는 일로 보인다. 큰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고 홍수가 나면 지대가 낮은 지하차도에 물이 차며, 물이 차면 차량이 잠기고 인명사고가 날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이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또 금강홍수통제소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4시간 전에 미호천교 주변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이를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 등 기관에 통보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책임인지 모르겠지만 차량이 진입하지 않도록 지하차도만 통제했어도 이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코로나19 초기 사태 때는 또 어땠나. 전문가들이 초기에 제대로 봉쇄해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인기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인지 정치인들은 이곳저곳 다니며 ‘과도한 공포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고 다녔다. 지금이야 사실상 코로나19 국면이 종식됐지만 결론적으로 코로나19는 초기에 적극 대응을 했어야 하는 사태가 맞았다.

과거, 그리고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논란들을 보면 유난을 부려야 할 일에는 안일하고, 냉정하게 따질 일에는 호들갑을 떨었던 것 아닌가 싶다. 과거 롯데월드몰 괴담과 충북 오성 지하차도 사태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일에 더 흥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자극적이고 관심 끄는 괴담은 냉정하게 따지고, 놓치기 쉬운 안전문제에 대해선 더 신경 쓰고 유난 떠는 대한민국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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