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최저임금 역전에 구직 의욕 저하
“동일직장서 24번 수급” 부정수급도 만연
“실업급여는 시럽” 당정, 제도 보완 추진
“사업주 공모, 브로커 개입 특별조사 강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일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쉬면서 받는 실업급여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으면서 구직활동에 적극 나서지 않고 고용보험 재정이 급격히 악화하는 데 따른 대응이다. 사업주 공모나 브로커 개입 등 노동현장에 만연한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행정조치를 강화하겠단 방침도 제시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실업급여는 재취업 활동을 하는 실직 근로자의 생계안정 등을 위해 국가가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에게 생계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최근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단 비판이 나온다. 실업급여의 목적은 근로의욕 고취와 재취업 촉진이지만 최저임금보다 높은 금액, 무제한 반복수급, 부정수급 등으로 구직자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저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단 분석이다. 

이에 정부와 여당도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이날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선 당정 주요 인사들과 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업급여가 노동시장에서 왜곡 운영되는 사례를 살펴보고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 "최저임금 179만원, 실업급여는 184만원···동일직장서 24번 수급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이와 연동된 실업급여가 빠르게 올랐고 상당수 수령자가 세후소득보다 높은 실업급여를 수급받는 불공정이 확인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을 두고 일하는 개미보다 배짱이를 더 챙겨주냐며 비난하는 여론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저임금 근로자의 세후 월 근로소득은 179만9800원으로 최저 월 실업급여 184만7040원보다 4만7240원 적다. 출퇴근 비용, 식비 등 기타비용까지 포함하면 실업급여를 받는게 일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이익인 상황이다. 

반복, 부정수급 문제도 거론됐다. 임 위원장은 “실업급여를 5년간 세 번 이상 받는 반복수급도 매년 증가해 2018년 8만2000여명이었던 것이 2021년도부턴 10만명이 넘어 최근 5년 간 24.4% 증가했다”며 “또 동일 직장에서 24번이나 실업, 재취업을 반복하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고용보험 재정 안전성을 위해 실업급여 제도의 손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2018년 이후 실업급여 재정적자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고용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대다수 선진국은 고용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 수급요건과 지급 수준을 합리화하는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수급자의 적극적 구직 의무를 강화하고 수급자의 일을 통한 자립을 지원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차관은 또 “우리 고용보험은 외환위기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최저임금 연동, 손쉬운 수급 요건으로 인해 실업급여 반복 수급 등 근로의욕 저하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이젠 오랫동안 애써 눈감아왔던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는데 민당정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일하는 사람이 적게 받는 기형적 실업급여는 바뀌어야 한단 원칙을 같이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가 달콤한 보너스란 뜻의 ‘시럽’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구직자가 조속히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실업급여 제도가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하는 높은 하한액 제도와 지나치게 관대한 실업급여 지급요건으로 단기취업과 실업급여 수급을 반복하는 왜곡된 관행을 갖고 있단 지적도 제기됐다. 이로인해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가중되고 있고,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구직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단 점도 거론됐다.

지난해 수급기간 중 재취업율이 28%에 불과하단 문제도 제기됐다. 박 의장은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일하는 것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유리한 잘못된 구조에 있기 때문”이라며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최저임금을 매년 대폭 인상하고 2019년엔 실업급여 보장성을 확장하면서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모순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선진국 사례 등을 참조해 세 가지 제도 개선 방향에 공감대를 모았다.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구직자가 활발한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부정수급을 예방하기 위한 행정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박 의장은 “행정조치와 관련해선 면접 불참 등 형식적 구직활동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사업주 공모나 브로커 개입형 부정수급에 대해선 특별점검과 기획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현장과 국민 목소리를 경청해 앞으로 노사단체, 언론과, 전문가 의견 수렴해 빠른 시일내에 제도 개선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주최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주최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 "실업급여 받으려 자진퇴사 직원도 권고사직 요구"

한편, 이날 공청회에선 기업 등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실업급여 실태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교통시스템 회사를 운영하는 김홍길 한길에이치씨 대표는 “열심히 다니던 직원들이 퇴사를 결정했을 때 그들이 권고사직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히 있었다. 그 이유는 실업급여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직원을 보충할 때도 구직자가 면접장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직원이 연락하면 ‘죄송하다, 그냥 입사지원했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가 뽑는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의 입사자조차 지원을 쉽게 많이 한다. 실업급여 요건 안에서 구직활동을 하는 걸 나타내기 위해 지원을 한 것 아니냔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1년 6개월 안에 6개월 이상 근무하면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직원들은 1년6개월 안에 계속 근무 6개월이 아닌 짧게 근무하다 관둬도 1년 6개월을 통산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쉽게 이직한다”며 “(인력)수요는 많은데 공급을 축소시키는 이런 정책 때문에 어려운 중소기업이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서울지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 조현주씨는 “퇴직하면 퇴직처리 되기 전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센터를 방문한다”면서 “어두운 얼굴로 오는 분들은 드물다. 그런분들은 장기간 근무하다 갑자기 퇴직한 분들이다.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분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데 대부분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고 말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선글라스, 옷을 사는 등의 실태를 언급한 조 씨는 “일자리 소개하려고 연락하면 ‘나 취업 안할테니까 연락하지마’. ‘취업하라고 하지마’ ‘(수급기간) 끝날때까지 연락 주지 말아달라’고 얘기한다”며 “우리도 돕고 싶은데 본인들 스스로 거부하니 속상할 때가 많다. 필요한 제도인데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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