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재판 청구한 구 전 대표 등 4인 불출석
박종욱 대표직무대행·강국현 사장, 각 400만원 선고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 사진 = 김용수 기자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 사장 / 사진 = 김용수 기자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이른바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는 구현모 전 KT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 관련 1심 재판에서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현모 전 KT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장 겸 대표이사직무대행 사장과 강국현 KT 커스터머부문장 사장에는 각 400만원, 김영술 KT 국회대관담당 상무에는 300만원이 선고됐다. 이날 구 전 대표 등 4명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은 KT 법인과 전·현직 임원이 2014년 5월~2017년 10월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KT는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비자금 규모는 11억5000만원으로 이중 4억3790만원이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제공됐다.

구 전 대표는 당시 황창규 전 KT 회장의 비서실장(전무)과 경영지원총괄(부사장)로 근무하며 대관 담당 임원에게 자금을 받아 자신의 명의로 국회의원 13명에 1400만원을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은 국회의원 12명에게 1200만원을, 강 사장은 15명에게 1500만원을, 김 상무는 3명에게 600만원을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구 전 대표는 지난해초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 업무상 횡령 혐의로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공판기일에서 검찰은 구 전 KT 대표에게 10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박 사장과 강 사장에겐 각각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김 상무에겐 4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이 가운데 진행된 선고기일에서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같이 CR부문의 자금조성 행위에 직접 가담한 바 없고 CR부문으로부터 전달받은 자금의 출처까진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은 경영지원총괄 부사장, 마케팅부문장, 전략기획실장 등 임원으로서 CR 담당 부서의 사정과 자금이 회삿돈이란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회사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한단 건 알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업무와 무관한 단순 사자 역할을 했더라도 정치자금을 기부한단 사정을 알고 자금을 송금한 역할을 한 이상 공범으로서 책임을 진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피고인들은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과 증거에 비춰 보면 공소사실은 모두 유죄로 입증된다”고 했다.

이어 “KT는 공공성이 강조되는 정보통신사업, 뉴미디어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으로,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준법행령에 관한 고도의 책임이 요구됨에도 피고인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함으로써 직무의 공정성과 청렴성에 대한 일반 시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행한 범행은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KT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보이는 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기부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정치자금 기부가 입법과정에 미친 영향이 조사되지 않은 점, 기부금 일부를 반환한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정식재판을 청구한 구 전 대표 등 4명 외에도 함께 기소된 전직 KT 임원 6명에게 300만~400만원형을 선고했다.

법정에 출석한 전 KT텔레캅 대표 박아무개씨는 “법정에 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을 살면서 알고 지은 죄도 있고, 모르고 지은 죄도 있는데 모르고 지은 죄를 깨달았다”며 “KT는 훌륭한 회사인데, 몇몇 때문에 허탈하게 해 죄송하다”고 했다.

현재 구 전 대표 등은 정치자금법 위반죄와 다른 죄를 분리 선고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같은 범죄사실에 대한 ‘업무상 횡령’ 혐의 관련 재판도 받고 있다. 해당 혐의 관련 다음 공판기일은 다음달 11일로 예정됐다. 이날은 황 전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인회 전 KT 사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된다.

한편 이날 선고 직후 KT새노조는 논평을 통해 구 전 대표가 정식재판을 청구해 과도한 법률비용을 쓴 점을 비판했다.

KT새노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검찰이 KT새노조가 고발한 국회의원 뇌물공여 등 혐의는 다 빼서 사실상 검찰이 봐주기로 횡령과 정치자금법 위반만 약식기소한 사건이다. 별도 재판을 통해 이 사건공범들이 이미 유죄가 확정된 바 있어 유죄가 예견된 사건이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구 전 대표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지금까지 막대한 법률 비용을 쓰면서까지 재판을 질질 끌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쪼개기 후원 사건은 구 전 대표 취임 시점부터 시작된 사법리스크였고 결국 오늘 현실화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 KT가 겪고 있는 초유의 경영공백 사태는 구현모 사장 취임 때부터 예정됐다”며 “구 전 대표와 카르텔을 형성한 이사회의 막무가내식 밀어주기 연임이 결국 이 사태를 초래했다. 따라서 향후 신임 경영진이 구성되는 대로 이들 전임 이사들에 대해서도 단호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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