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소비자물가 21개월 만 2%대 진입···석유류 가격 역대급 하락 ‘한몫’
근원물가 4%대 지속, 농산물 불안 조짐···농식품부, 주중 대책 발표 예정

4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 내 청과물 매장 모습. 손님들이 매장 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4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 내 청과물 매장 모습. 손님들이 매장 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여름이라 그런가 과일이랑 채소값이 많이 올랐어요.”

4일 낮 서울 광진구의 한 전통시장 내 청과류 매장. 원래라면 매장 가득 과일과 채소가 박스채 쌓여있어야 했지만, 남부지방 장마 영향으로 곳곳이 비어있었다. 과일과 채소를 고르던 한 손님은 “원래 싼 곳인데 여기도 가격이 좀 올랐네”라며 발길을 돌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하며 수치상 인플레이션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잠재된 불안 요인을 감안했을 때 안심할 수준은 아니란 지적이 나온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가운데 가격 변동폭이 큰 농산물은 장마와 폭염으로 더욱 들썩이면서 가계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단 지적이다.

4일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11.12(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달보다 2.7% 올랐다고 발표했다. 2%대 물가상승률은 지난 2021년 9월 2.7%를 기록한 이후 21개월 만이다. 

지난해 무섭게 치솟던 물가가 올들어 점차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 5.0%였던 물가상승률은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로 하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2%대까지 떨어진 것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가격이 1985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하락한 영향이 컸다. 경유 32.5%, 휘발유 23.8%, 자동차용 LPG 15.3% 각각 떨어지면서 석유류 가격은 전년 대비 25.4% 내렸다. 정부 개입으로 소폭 인하된 라면가격은 이번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2%대에 진입한 것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 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대 물가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국에 불과하다”며 “국제 원자재 가격 안정 등으로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국제원자재 변동성, 기후여건 등에 따른 불확실성을 감안해 물가안정 흐름이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2%대 물가 진입에도 국민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보긴 어렵단 지적도 나온다.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요금이 전년 동월 대비 25.9% 올랐고, 계절적, 일시적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4.1% 상승했다.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지만 여전히 4% 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농산물 물가의 경우 최근 장마, 폭염 영향으로 가격 불안조짐이 두드러진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 가격동향을 보면 도매가 기준 적상추 4kg 가격은 3만80원으로 한 달 전보다 61% 올랐다. 청상추 4kg은 1개월만에 59% 상승한 2만9020원이었다. 

근래들어 가격 불안이 더해지고 있다. 전날에 비해 하루 만에 오이 가시계통(10kg)은 44.1%, 수박(1개)은 14.2%, 열무(4kg)는 14.1% 각각 뜀박질했다. 다만, 채소류 외에 곡물, 과일, 수산물 등은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과일, 채소 매장 점원 A씨는 “상추의 경우 한 봉지에 1000원하던걸 2주 전부터 2000원으로 올렸다. 요 근래 물건이 잘 안 들어오는 편이다”며 “예전보다 값이 오른건 맞는데 채소는 그때그때 값이 들쭉날쭉해 정상가격이 얼마라고 보는게 어렵다”고 말했다. 

60대 주부 이 모씨는 “요즘에 안 오른게 없는 것 같긴 하지만 특히 음식값이 오르면 살림 부담이 크다. 옷 같은건 비싸면 안 사도 큰 문제 없지만, 밥, 반찬은 싸든 비싸든 먹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에도 먹거리 물가인 농산물 가격이 들썩이면 전체 물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농산물 가격을 주목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산물 물가 불안에 대비해 비축 물량, 계약재배 물량을 각각 확보하고 할인쿠폰제도를 검토하고 있다”며 “농산물 물가 불안 관련해 이번주 중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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