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고정비용 손해 ‘추정 경험칙’ 더 이상 적용 안 해
“판매·매출 감소해 고정비용 미회수 때 비로소 손해”
노조 측 “불법파견이 본질”···국회는 노란봉투법 입법 초읽기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파업 손해배상 대법원 선고에 따른 금속노조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관련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파업 손해배상 대법원 선고에 따른 금속노조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관련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위법한 쟁의행위로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고정비용 상당 손해를 조합원이 갚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15일 현대자동차가 노조원 5명을 상대로 낸 다른 파업 손해배상 사건 상고심의 새 판례가 이 사건에도 적용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9일 현대차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동조합 비정규직지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3건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세 사건 모두 파업으로 인한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를 인정했던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법원은 제조업체가 위법한 쟁의행위에 따른 조업중단으로 임차료·보험료 등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 생산이 줄면 매출감소·고정비용 상당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추정’해 손해액을 계산할 때 고정비용을 포함했다. 제품이 생산됐다면 이후 판매돼 제조업체가 매출이익을 얻고 그 생산에 지출된 고정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파업으로 조업이 중단되면서 생산이 감소했더라도 이후 연장근로 또는 휴일근로 등을 통해 부족 생산량이 회복되는 등 매출이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액을 추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고정비용 손해는 조업중단으로 생산량이 감소함에 따라 판매와 매출이 감소해 매출액에서 회수할 수 있었던 고정비용을 회수하지 못할 때 비로소 손해가 되는 것”이라며 “쟁의행위가 종료된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추가 생산으로 부족 생산량이 만회된 경우 생산감소에 따라 매출감소를 추정하는 경험칙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자동차처럼 예약판매방식으로 판매되거나 제조업체가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에 있는 경우 생산이 다소 지연돼도 매출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판결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앞서 현대차는 2012년 8월~12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불법파견 해결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공장을 점거하자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원과 노조를 상대로 모두 5억4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에서는 약 4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이 인정됐다.

금속노조 측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회사의 불법파견이라며 노동자들에게만 민사적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이 사건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해결을 위해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파업에서 시작됐다. 사안의 본질은 현대차의 불법파견 범죄에 있다”며 “현대차의 이 같은 범죄행위로 이미 여러 차례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졌으나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회사는 20년째 비정규직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회가 불법파견에 주목하지 않고 유독 불법 파업에만 엄격한 판단을 내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손배가압류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란봉투법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쟁의행위 탄압 목적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 직회부 요구안이 처리된 상태다.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부의 여부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민주당은 본회의 당일 부의뿐 아니라 상정에 표결까지 시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상정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를 담은 손경식 회장의 서한을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손 회장은 서한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가 심각하게 붕괴될 것이며,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로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