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노조, 1년째 본점 이전 반대 투쟁
많은 정책 그러하듯 '선한 의도, 나쁜 결과' 반복
부산 이전만 놓고 논쟁할 때 아냐···KDB생명 매각 및 대한항공·아시아나 M&A 등 과제 산적
한국전력 대규모 적자로 건전성 우려 경고까지···어느 때보다 산업은행 본연 역할 충실할 때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지난 7일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기자간담회나 특별한 일정은 없었지만 같은 날 KDB산업은행 노조는 여의도 본점과 서여의도 일대에서 '산은 이전 반대 투쟁 1주년 기념 전직원 결의대회 및 이전 반대 행진'을 개최했다. 산업은행 노조는 지난해 6월 8일 강석훈 회장 출근 저지 투쟁을 시작으로 본점 부산 이전에 반대하며 1년 째 매일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이날도 결의대회에 참석한 산업은행 직원 1000여 명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후문 앞에 집결해 지난 1년간의 투쟁 성과를 되돌아보는 약식 행사를 마친 뒤 국회 정문 및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단체 행진하며 정부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을 비판했다. 노조는 산업은행이 국내외 금융기관·법무법인·회계법인 등 다수 민간기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와도 상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 이전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KDB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 국정과제로 지정된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산업은행을 비롯해 한국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의 경우 부산과 인근 지역 등 지방을 인재와 기업이 모이는 지역거점으로 강화한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고 고시하는 등 부산 이전을 위한 행정 절차가 속속 진행 중이다.

많은 정책이 그러하듯 의도와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선한 의도로 정책을 펼쳐도 결과는 참담한 실패, 나쁜 결과를 낳는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로마시대의 최고 권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처음의 의도는 선한 것이었다(All bad precedents begin as justifiable measures.)"고 말한 것처럼 '선한 의도, 나쁜 결과'는 반복된다. 

문제는 부산 이전 논란을 떠나 해당 이슈만 놓고 논쟁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산업은행은 HMM·KDB생명보험 매각과 함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등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부산 이전과 같은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면서 정작 산적한 현안들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린 모습이다.

그렇다고 본점 부산 이전이 실질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 절차가 끝났다고 해도 법안 개정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현행 산업은행법 제4조에 따르면 산업은행 본점은 서울에 있어야 하며 산업은행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한 곳에 지점, 대리점, 그 밖의 영업소 또는 사무소를 둘 수 있다.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다. 여당은 본점 소재지를 부산으로 규정하는 산은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과 노조가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 사이 KDB산업은행 인력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21년 38명에 불과했던 산업은행 퇴사자는 지난해 97명으로 급증했다. 산업은행 노조 측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자발적 퇴사자는 30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퇴사자 급증에는 현 정부의 산은 부산 이전 논의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에는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로 건전성 우려에 대한 목소리까지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한전 지분 33%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지난해 한전이 34조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보인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6조177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산업은행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전력의 순손실은 지분법 평가상 산업은행 손실로 잡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08%다. 이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 기록한 11.38% 이후 최저 수준이다. BIS 자기가존비율이란 은행이 보유한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 기업 정책금융 지원 활동이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력이 산업은행의 자금을 흡수하면서 다른 기업에 투입될 재원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다. 통상적으로 BIS 비율이 0.01%포인트 하락하면 산업은행 대출 여력은 약 2500억원 가량이 감소한다.

KDB산업은행은 대한민국 산업과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정책금융기관이다. 설립근거가 되는 산업은행법 제1조에는 '산업의 개발·육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지역개발, 금융 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하고 금융산업 및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명시화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산업은행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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