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의대 정원 동결 상태···복지부, 특정 과목과 수도권 집중 완화책으로 확대 추진
의료계, 정원 확대 의료체계 위협 주장···“필수의료 공백 해결 중요”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발언으로 의대 정원 확대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18년째 묶여있는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고 특정 진료과목과 수도권에 의사가 몰리는 현상도 개혁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의료계는 정원 확대가 의료체계에 위협을 준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향후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매년 의사가 추가 배출돼 오히려 의사가 과잉공급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정부와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최근 현안인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이라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정원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복지부가 OECD ‘보건 통계 2022’를 분석한 결과, 지난 연말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2.1명이다. OECD 평균 3.7명의 56.8%다. 가장 높은 서울(3.4명)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1.8명으로 집계됐다.  

조 장관은 “2024년 입시요강은 나왔으니 2025년 의대 정원에는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며 “고령화가 되고 건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니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들이 반대를 많이 하지만 의료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며 “의료계도 국민 건강 보호 증진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으니 협의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최근 복지부 분위기도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돌파 가능성을 예상케 한다. 보건의료정책 실무를 맡았던 고위직 공무원이 최근 직위해제되며 개혁 추진 당위성이 강조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정부 동향에 정통한 의료계 관계자는 “고위직 직위해제 원인이 어떻게 됐든 이제 복지부는 대통령실 주문에 적극 부응해 정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복지부는 지난 2006년부터 18년째 연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한 의료서비스 확대가 복지부 계획으로 판단된다. 관가 관계자는 “법조계 등 다른 직역이나 분야는 전문인력을 늘리며 경쟁체제를 구축했는데 의료계만 의대 정원을 유지하며 내부 경쟁이 적다는 것이 집권세력 시각인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 연금개혁 등 3대 개혁을 내세우던 정부가 최근 보건의료 개혁을 강조하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특히 현 의료시스템 문제인 특정 진료과목과 수도권 집중 현상을 의대 정원 확대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정부 정책기조로 분석된다. 실제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일부 기피과목은 정도가 심하다는 지적이다. 대학병원 61곳의 올 상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에 따르면 전체 과목의 모집정원 대비 확보율이 84.1%인 반면 소청과는 20%대로 집계됐다. 이에 일부 병원에서는 소청과 의사 부족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국내 1호 어린이병원인 소화병원은 최근 주말 진료를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의사들이 수도권에 몰리는 현상도 개선이 시급하다. 충청북도에 소재한 모 병원은 심장내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당시 병원측이 제시한 연봉은 1인당 1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문제점을 의대 정원 확대로 돌파하려는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 7월 의대 정원을 2022학년부터 400명씩 늘려 의사 4000명을 추가 양성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코로나19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로 논의를 늦춘 바 있다. 관가 관계자는 “정권 성격에 관계 없이 의료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아 이를 추진하려 했지만 매번 의료계 반발에 좌초됐다”라며 “이번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복지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 대신 현재 의료시스템 개혁 1순위는 필수의료 공백 해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대 정원과 필수의료, 지역의료 공백은 논리적으로 연관성이 떨어진다”라며 “이같은 모순은 의료현장에서 환자에 대한 위해로 직접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당장 복지부가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의대 입학과 교육, 수련 과정 등을 거치는 데 최소한 15년이 소요되는데 최대 현안인 필수의료 공백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변인 지적이다. 의협은 복지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무조건적 의료시스템 해결 방안으로 파악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최소 15년 후 여파가 나오기 시작하는 의대 정원 확대가 1순위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이다. 

의협은 전체 인구가 2022년 5200만명에서 오는 2070년 3800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의사 수는 매년 3200여명이 추가 배출돼 의사 부족이 아닌 오히려 의사의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OECD 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고 ‘기대수명, 주요 질병별 사망률, 영아사망률’ 등 주요 지표도 OECD 평균보다 나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현재 문제는 필수의료 담당 의사들이 줄고 있다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 지원을 통해 취약지역과 기피분야에 인프라 구축 및 보상과 처우개선 등 유인기전을 마련하고 의사들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만약 필수의료 및 지방 기피에 대한 해결책 없이 복지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면 해당 분야 기피는 해결되지 못한 채 국민의료비 급증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위협이 될 것이란 게 의협 우려다. 김 대변인은 “현 의료시스템 1순위는 필수의료 공백 해결”이라며 “일각에서 나오는 파업 주장은 의료계 주류 의견이 아니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보건의료 개혁 방안의 하나로 적극 추진할 전망이다. 반면 의료계는 정책 1순위를 필수의료 공백 해결이라고 내세우며 내심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가 관계자는 “보건의료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환자”라며 “당장 소청과 의사 부족 현상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복지부와 의료계가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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