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변제금 대출···최장 10년 무이자
면적·피해규모 요건 삭제···‘고의적 갭투자’도 구제
“다시 빚 져서 전셋집 구하라는 대책”
5억원 이상·입주 전 피해자 제외, 사각지대 우려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됐다. 최근 3개월 동안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잇따라 사망하는 등 비극이 이어지자 여야가 모처럼 한뜻을 모은 것이다. 다만 피해자들의 여전한 원성과 사각지대 해소라는 숙제가 남아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전일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달 28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 상정 후 27일 만이다. 이번에 통과된 특별법은 다음 달 1일(잠정) 시행될 예정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가 경·공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거나 갱신계약으로 인해 최우선변제금을 지급받을 수 없는 피해자는 경·공매 완료 시점의 최우선변제금 수준(지난 2월 기준 서울 5500만원,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을 최장 10년간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최우선변제금 범위를 초과하면 2억4000만원까지 1.2∼2.1%의 저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특별법 적용을 받는 피해자 대상은 임차보증금 5억원 이하인 임차인으로 확대했다. 주택 면적 기준을 없애고 당초 임차인이 보증금 ‘상당액’을 손실하거나 예상되는 경우로 규정한 것도 삭제했다. 전세 사기 피해자 외에 ‘무자본 갭투기’로 인한 깡통전세 피해자, 근린생활시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이중계약과 신탁 사기 등에 따른 피해도 적용 대상이다. 경·공매가 개시된 경우 외에도 임대인의 파산 또는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도 지원 대상에 넣었다.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경·공매 절차를 대행한다. 정부가 경·공매 비용의 70%를 부담한다. 전세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한 신용회복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최장 20년간 전세 대출금 무이자 분할 상환이 가능하다. 상환의무 준수를 전제로 20년간 연체 정보 등록·연체금 부과도 면제된다.

이 밖에도 특별법엔 ▲조세 채권 안분 ▲우선매수권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 방안이 담겼다. 조세 채권 안분이란 임대인의 세금 체납액이 많아 경·공매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 전체 세금 체납액을 임대인 보유 주택별로 나눠 경매에 부치는 것을 말한다. 전세 사기 피해자는 거주 중인 주택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우선매수권을 부여받고 경매로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금융지원을 받게 된다. 피해자가 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을 경우 LH 우선매수권을 양도한 뒤 LH가 공공임대로 활용하게 된다.

특별법은 2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여야는 법 시행 후 6개월마다 국토위 보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 입법하거나 적용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제도 없이도 지원 자체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무이자와 저금리 대출 등으로 인해 피해자 1인이 많게는 수천만원대의 이자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2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정부차원의 전세사기·깡통전세 추가대책 마련 및 대통령 면담 재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피해자 중 상당수는 여전히 보증금 반환 방안을 마련해 달라며 특별법 내용에 반발하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는 전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보증금을 그대로 둔 채 살던 집을 경매로 사거나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등의 다시 빚을 져서 전셋집을 구하는 방식의 대책을 마련했다”며 “이는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고 비판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사각지대가 많은 특별법이 그대로 처리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정부는 보완 입법하겠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은 단 6일도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6개월 뒤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오늘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몇 가지 대책을 소극적으로 채택한 뒤 선 구제 후 회수를 비롯한 핵심 대책은 완전히 외면했고 국회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이를 용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당장 이 작은 대안이라도 필요한 피해자가 있기에 특별법 통과를 전면 반대할 수도 없었다”며 “입주 전 사기, 보증금 5억원 이상, 수사 개시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 등 많은 피해자가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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