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이사 인터뷰
“반도체 미세공정 수요 증가···원자현미경 필수”
“신제품·신기술 개발···2위 업체와 격차 더 벌릴 것”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이사. /사진=파크시스템스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현대 과학과 산업 기술은 축소 지향적이다. 모든 걸 작고 정확하게 관찰한 뒤 원리를 응용해 신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미지의 영역인 나노 시대가 광범위하게 열린다. 파크시스템스는 원자현미경과 나노 계측장비로 사업을 확대하겠다”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이사는 지난 19일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단위의 초미세 공정 중요성이 높아져 전공정과 후공정 등에서 원자현미경(AFM)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의 배율은 각각 수천배와 수십만배인데, 원자현미경은 수천만배 수준으로 미세 구조 측정에 용이한 만큼 반도체 이외 디스플레이, 바이오 분야로 응용처를 확장할 계획이다.

파크시스템스는 지난 2015년 코스닥 상장 이후 매년 3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은 1245억원, 영업이익은 32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6%, 85% 증가했다.

회사는 반도체 불황인 올해에도 30% 이상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규 투자 감소에도 수율 개선을 위한 분석 장비 도입이 늘어나는 중이고, 매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40%)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원자현미경 수요 창출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파크시스템스는 지난 1997년 원자현미경 전문업체로 창립 이후 약 30년간 원자현미경 외길을 걸었다. 박 대표가 원자현미경을 접한 건 스탠퍼드대 유학생 시절인 1982년이었다. 그는 원자현미경을 최초로 개발한 캘빈 퀘이트 교수의 연구원이었다. 당시 원자현미경 중요성을 깨달은 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파크사이언티픽인스트루먼트(PSI)’란 회사를 창업했다. 파크시스템스는 박 대표가 1997년 PSI를 미국 검사장비 업체인 ‘더모 스펙트라’에 매각한 뒤 같은 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세운 회사다.

박 대표는 원자현미경이 전자현미경 일부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원자현미경 시장 규모는 약 6000억원으로 추정돼 전자현미경(4조~5조원)보다 작지만, 연평균 성장률은 5~8% 수준으로 높다.

파크시스템스는 지난해 원자현미경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시장조사업체 QY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파크시스템스 점유율은 20.3%로 2위인 브루커(18.8%)보다 1.5%포인트 높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11월 출시한 극자외선(EUV) 포토마스크 리페어 장비 ‘Park NX-Mask’를 앞세워 시장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반도체 회로 패턴을 형성할 때 필요한 부품인 마스크의 결함을 측정하고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EUV 공정 원가 절감과 수율 향상에 도움을 준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Park NX-Wafer’ 장비. /사진=파크시스템스

-원자현미경은 반도체 공정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나

전공정과 후공정을 가리지 않고 쓰임새가 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반도체에서 원자현미경은 ‘있으면 좋은 장비’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장비’가 되고 있다. 활용처는 정말 다양하다. 어떤 반도체 기업은 라인 하나에 8개의 원자현미경을 투입한다.

원자현미경이 활용되는 대표적인 기술은 2장의 웨이퍼를 이종접합해 새로운 소자를 만들 수 있는 ‘웨이퍼-투-웨이퍼(W2W) 본딩’이다. 높낮이를 나노미터 단위로 컨트롤해야 하는데, 원자현미경을 써야 측정할 수 있다. 또 반도체의 깊은 트렌치(웨이퍼 표면을 아래로 파내 만든 공간에 셀을 배치하는 공법)를 자르지 않고 정확하게 보려면 원자현미경을 활용해야 한다.

-지난해 선보인 EUV 마스크 리페어 제품은 어떤 장비인가

반도체 공정에서 EUV 시대가 열리면서 마스크 리페어가 중요한 화두가 됐다. 펠리클(마스크를 보호하는 부품) 수율이 낮아 많이 쓰지 않다 보니 이물질이 들러붙는 문제가 생긴다. 주기적인 클리닝이 필요한데, 잘 안 없어지는 물질이 많다.

Park NX-Mask는 원자현미경으로 결함을 계측한 뒤에 음식물 찌꺼기를 이쑤시개로 파내듯 긁어낼 수 있는 장비다. 리페어하는 툴은 케미컬 세정이 있고 레이저도 활용된다. 성능이 좋아서 고객사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원자현미경이 반도체 이외 다른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나

디스플레이용 장비도 개발했다. 주요 패널업체에 공급 중이다. 원자현미경을 활용하니 기존 제조 방식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프로세스 컨트롤이 좋아졌다고 한다.

원자현미경은 분야를 막론하고 나노 단위 공정에 모두 쓸 수 있다. 반도체를 시작으로 여러 분야에서 수요가 증가했다. 공급이 늘어나면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가격도 더 낮아질 것이다.

-원자현미경 시장 성장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몇십 년 후에는 전자현미경 수준으로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전자현미경 일부 시장과 광학현미경 및 광계측 기술 일부분도 원자현미경이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식품, 샴푸, 시계까지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시장조사업체 분석 결과 지난해 브루커를 제치고 글로벌 원자현미경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브루커와의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본다. 파크시스템스는 신제품과 신기술을 맹렬하게 개발하고 있다. EUV 마스크 리페어 장비를 비롯해 백색광 간섭계(WLI)와 원자현미경 장점을 결합해 측정 범위를 넓히고 정밀성을 높인 ‘하이브리드 WLI’ 제품, 화학적 특성 정보까지 알려줄 수 있는 ‘NX-IR’ 제품 등이 대표적이다.

후발주자가 쫓아오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나노의 세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작은 진동, 소음에도 반응하고 온도가 0.1도만 변해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파크시스템스 제품 성능을 95%까지 쫓아와도 마지막 몇 %는 격차를 못 줄인다.

원자현미경 분야에 발을 들인 게 스탠퍼드 연구원 시절인 1982년이다. 이후 PSI와 파크시스템스를 거치면서 40년간 한 우물을 팠다. 그 사이 종합적인 노하우를 축적했기 때문에 쉽게 따라올 수 없다. 경쟁사들이 앞으로 10년간 수천억원을 투자해야 우리와 엇비슷한 수준이 될 거라고 보는데, 그 사이 파크시스템스는 더 앞서나갈 것이다.

/사진=파크시스템스

-지난해 10월에는 독일의 계측장비사인 ‘아큐리온’을 인수했다

아큐리온은 이미징 분광 타원계측기(ISE)와 제진대(AVI) 기술을 갖고 있는 강소기업인데, 이걸 원자현미경에 접목하면 제품 성능을 높일 수 있다. 벌써 좋은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다. 몇몇 반도체 회사에 제안했더니 자동화 인라인 장비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한다.

-추가 M&A도 추진 중인가

몇 년전부터 M&A할 회사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원자현미경으로 한 우물을 파서 세계 정상에 등극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접 시장 확장이나 기술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기 위해 ‘미래사업개발부’란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 여기서 신사업을 찾고 있고, 아큐리온 인수도 이곳에서 성사시켰다.

지금도 검토 중인 M&A가 몇 건 있다. 회사 성장을 위해 M&A는 꼭 필요하다. 결국 회사는 ‘인수하느냐, 인수당하느냐’ 둘 중 하나다.

-파크시스템스를 어떤 기업으로 만들고 싶나

글로벌 탑5에 해당하는 미국의 장비사 KLA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KLA는 반도체 계측장비만 생산하는데, 연간 매출이 13조원 이상이고 시가총액은 70조원이 넘는다. 이런 점에서 파크시스템스의 업사이드(상승 여력) 잠재력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또 기업의 경쟁력은 조직문화에서 나온다. 강압적인 분위기 없이 임직원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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