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노선에서 독점 우려···영국 때처럼 자국 항공사에 슬롯 및 운수권 배분할 가능성 높아
티웨이항공·에어프레미아, 유럽 노선 취항 위해 중대형기 도입 등 준비해 와
“국내 LCC 운항 경쟁력 갖췄으며 항공권 가격 하락도 기대”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유럽연합(EU)이 독점 우려를 표하면서 셈법이 복잡해졌다. EU가 독점 우려를 이유로 슬롯 및 운수권 반납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국 항공사에 노선을 배분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으로 외항사들만 혜택을 보게 되고 정작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수혜를 입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는 지난 17일(현지시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관련 2단계 심사 중간 보고서를 발행했다. 집행위는 양사 합병시 경쟁 제한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집행위는 “양 사가 합병하면 한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 될 수 있다”며 “화물 운송 서비스의 경우 모든 노선에서 경쟁 위축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에 대한항공은 일정 기간 내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며, 또한 내달까지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담은 시정조치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EU는 대한항공 시정조치방안과 답변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오는 8월3일 전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양 사 합병을 위해선 신규 항공사 진입이 필수적인데, 업계에선 EU 항공사들에게 혜택이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앞서 영국의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을 승인하며, 양 사가 보유 중인 히스로공항 17개 슬롯 중 7개 슬롯을 반납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반납한 슬롯은 영국 버진애틀랜틱으로 넘어갔다. 또한 버진애틀랜틱은 대한항공이 창립멤버로 있는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EU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여객 노선 및 화물 노선에 대해 독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사례처럼 자국 항공사에 노선을 이전할 것을 요구할 곳으로 예상된다.

현재 유럽 노선은 에어프랑스-KLM, 루프트한자, 핀에어 등 EU 외항사들이 운항 중이며, 이들에게 노선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내 LCC에겐 악재다. 국내 LCC들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관련 운수권과 슬롯 배분을 조건부로 승인할 때부터 유럽 노선에 대해 눈독을 들여왔다.

특히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는 중대형기를 발빠르게 도입하면서 유럽 노선 취항을 위해 내실을 다져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운수권 재배분이 이뤄질 경우,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한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 사진=김은실 디자이너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에어버스사의 중대형기 ‘A330-300’ 3대를 도입해 유럽 노선 취항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으며, 에어프레미아는 보잉사의 ‘B787-9’를 들여와 유럽은 물론 미주 노선 취항까지 진행 중이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는 A330-300 도입행사에서 “양사 합병 후 운수권 재배분이 진행될 경우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은 파리, 로마, 런던, 이스탄불, 바르셀로나 등 유럽 노선이다”라며 “서유럽이나 미국 서부 해안까지 가기 위해선 더 멀리 갈 수 있는 A330-200 등 도입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티웨이항공은 내년 A330-300 2대를 추가로 확보하고 오는 2027년까지 대형기를 20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최근엔 A330-300 기종 무게를 줄여 서유럽까지 운항이 가능하도록 했다.

에어프레미아는 오는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노선을 운항할 계획이며, 오는 2025년까지 B787-9 기종을 10대까지 늘려 유럽과 미주 노선에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일각에선 국내 LCC들이 외항사 대비 유럽 노선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업계에선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슬롯과 운수권만 확보가 된다면, 중대형기 규모를 늘려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며 “또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반납하는 노선을 한 항공사가 다 가져가는게 아니라, 개별로 논의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공사 규모가 꼭 커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LCC가 진입하게 된다면 기존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운항할 때보다 20% 이상은 항공권 가격이 저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EU 중간심사보고서 발부와 관련해 오히려 합병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EU의 이번 조치는 앞서 영국 때처럼 EU가 수용할 만한 제시안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라며 “대한항공이 이에 상응하는 시정조치안을 내놓을 경우 EU 입장에선 승인을 불허할 명분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날 미국 한 매체에선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대한항공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소송 여부는 전혀 확정된 바 없으며, 한 매체가 소송 가능성을 제기한 것일 뿐”이라면서 “지난 12일 미국 법무부와의 대면 미팅을 통해 법무부 측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일정도 미정이다. 당사와 지속 논의하겠다는 공식 입장만 전달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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